[전문기자의 눈] ‘보수 트라우마’ 직시할 때

김성희 전문위원ㆍ언론학 박사

비상계엄 사태로 인한 조기 대선이 일단락되고 새로운 정부의 출범을 맞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이 결정되고 조기대선을 치르기까지 짧지만 참으로 지난한 시간이었다. 새로운 정부의 열쇠는 어쩌면 예상했던 대로 야당이었던 민주당의 손으로 들어갔다.

보수 진영의 거대 정당인 국민의힘은 탄핵 정국을 수습하고 새로운 리더를 세우는 데에 준비할 시간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역량 또한 부족했다. 혹자는 보수 진영 어느 한 후보의 무리한 고집 때문에 이번 대선에서 국민의힘이 참패했다고 탓하기도 한다. 대선 결과 각 후보의 득표율을 합산해 보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시간이 더 주어졌다고 해서, 지금 비난받고 있는 그 후보가 득표율 2위였던 다른 보수 진영 후보와 단일화했다고 한들 보수 정치인들의 본래 정치 역량이 달라질까? 필자는 회의적이다. 국민의힘을 비롯한 보수 진영은 항상 시간이 부족하며, 항상 단합과 협력에 취약하다. 시간 부족과 단일화 실패는 대선 참패의 ‘핑계’가 아니라, 실력과 역량 부족으로 인한 ‘원인’ 그 자체이다.

정치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은 단순히 선거에 있어서 국민에게 표를 많이 못 받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긴 뒤에도 끊임없이 내적 안정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힘, 지더라도 빠른 시간 안에 회복하고 후일을 도모할 수 있는 힘을 말하는 것이다.

만약 보수 정치 집단이 이런 역량이 있었더라면, 지난 정부에서 비상계엄이 발생하는 사태까지는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다.

한 가지 다시 상기하자면, 3년 전 지난 제20대 대선에서 보수의 승리는 진짜 실력으로 이긴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부동산 정책을 비롯하여 문재인 정부의 거듭된 실패로 인해 얻은 결과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후 2년 뒤에 있었던 총선에서 참패했으며,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과정이야 어찌됐든 비상계엄을 터뜨리게 된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보수의 간헐적인 승리는 자신의 실력이 아닌, 상대의 실패에 의지하게 되었다. 자신들의 정치 색깔과 상대의 과오에만 호소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정치 역량이 부족하다는 방증이다.

보수가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8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이후 이념적, 실무적 혼란과 공황 상태에서 여전히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통합된 비전을 제시하기는커녕, 아직도 내부에서 ‘누가 기고, 누가 아니냐’ 하는 이분법적 인물 가리기에만 에너지를 쏟아 붓고 있는 듯하다. 이는 바로 탄핵으로 인한 내적 불안과 회의 때문이다. 자신이 세운 대통령이 탄핵된 것은 엄청난 트라우마인 것과 동시에 콤플렉스이다.

트라우마와 콤플렉스의 교차결합은 ‘본질’이나 ‘근본’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부른다. 병자호란 이후 조선의 성리학자들이 그랬듯이 말이다. 기성 정치 평론가들을 비롯하여 유튜브의 정치 코멘터리안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보수 진영이 강박적인 자기 정화 작업으로 스스로의 입지를 좁히는 사이, 진보 진영은 자신 내부의 갈등과 모순을 그대로 포용한 채 생태계를 일구었다고 평한다.

부디 두 번의 탄핵과 이번 대선 참패가 다시 한 번 콤플렉스의 기폭제가 되어 보수 진영에 사화가 불지 않길 염원한다. 그러기에는 작금의 대한민국이 너무나도 위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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