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롯데손보, 후순위채 조기상환 강행…책임공방 격화

후순위채권 조기상환 강행
'규정 위반' vs '투자자 보호' 공방
지급여력 미달로 금감원 제지
"채권자 보호 우선"
금감원 "규정 무시 책임 피하기 어려울 것"

롯데손해보험이 후순위채권 조기상환권(콜옵션) 행사를 강행하면서 금융감독원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감독당국은 자본건전성 규정 미달을 이유로 제동을 걸었지만 롯데손보는 "채권자 권리 보호와 금융시장 안정이 우선"이라며 맞서고 있다.

8일 롯데손보는 900억 원 규모의 콜옵션을 확정적으로 행사해 공식적 상환 절차를 개시했다고 밝혔다. 롯데손보는 "이번 후순위채권 상환은 콜옵션을 행사해 금융시장 안정과 투자자 보호를 최우선으로 고려한 결정"이라며 "채권자 권리 보호와 시장 안정을 위한 충분한 자금 여력을 확보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콜옵션 행사를 연기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롯데손보가 2020년 5월 발행한 후순위채는 만기가 10년(2030년)이지만 발행일로부터 5년 뒤 콜옵션 행사가 가능하다. 콜옵션 행사는 관례로 통상 후순위채는 5년이 지나면 콜옵션을 행사한 뒤 다른 후순위채를 발행해 갚는다. 롯데손보는 지난 2월 신규 후순위채 발행을 통해 기존 채권 상환을 준비했으나 금감원이 채권 발행을 보류시킴에 따라 발행을 철회했다. 회사 측은 “당시 금융당국은 후순위채발행 수요예측 전날 정정신고를 요구하는 등 발행 조건을 강화해 실질적 발행이 어렵게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콜옵션 행사 이후 지급여력(킥스, K-ICS) 비율이 감독당국 권고 기준(150%)에 소폭 미달할 것으로 예상돼 롯데손보는 금감원에 비조치의견서를 요청했지만, 지난 7일 '불승인' 통보를 받았다. 금융당국은 롯데손보의 후순위채 조기상환이 킥스 기준선을 밑돌 수 있다며 이를 제지했다. 회사의 작년 말 기준 킥스 비율은 154.59%였지만, 후순위채를 조기상환할 경우 149.49%까지 하락할 것으로 추정된다. 감독당국은 킥스 150% 이상을 콜옵션 행사 요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100%를 밑돌 경우에는 적기시정조치 대상이다.

후순위채의 자본인정 비율이 낮아지는 구조가 이번 감독당국 개입의 실질적 배경이다. 금융당국은 보험사가 보유한 후순위채를 일정 조건에 따라 가용자본으로 인정하고 있다. 킥스 기준에 따르면, 잔존만기가 5년 이상이면 100% 자본으로 인정되지만, 이후 매년 20%씩 자본인정 비율이 감액된다. 4년은 80%, 3년은 60%, 2년은 40%, 1년은 20%이며, 1년 미만일 경우 자본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롯데손보가 후순위채를 조기에 상환하면 자본 인정은 즉시 중단되고, 이를 대체할 새로운 자본 조달이 이뤄지지 않으면 킥스 비율이 그대로 낮아진다. 조기 상환하지 않으면 투자자 신뢰 추락으로 후순위채를 다시 발행하기 어렵게 된다. 롯데손보 입장에서는 후순위채를 상환한 후 재조달하거나 유상증자를 하지 않으면 자본비율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킥스 비율이 150%를 밑도는 상황에서 후순위채를 재발행하는 것도 쉽지 않다.

롯데손보는 채권-채무 관계를 해소한 뒤 금융당국과 조율을 거치겠다는 방침이다. 회사 측은 “금융감독원의 결정에 따라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에 투자자 보호와 금융시장 안정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를 감안해 콜옵션을 행사함으로써 후순위채를 상환하기로 결정한 것”이라며 “현재 채권자들과 상환을 위한 실무 절차를 거치는 중이며, 수일 내 상환 절차가 완료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후순위채 상환은 회사의 고유자금인 일반계정 자금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계약자 자산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으며, 계약자 보호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회사의 자금 여력이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금융당국은 전례가 없는 상황인 만큼 향후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규정상 선순위 채권자 보호가 우선이며, 후순위채는 요건 충족 시에만 상환할 수 있다”며 “규정을 무시한 콜옵션 행사는 시장질서를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자본건전성이 불충분한 상태에서 후순위채를 상환하는 것은 선순위 채권자 보호라는 감독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크다”면서 “정당한 감독 절차를 무시하고 자의적으로 상환을 강행할 경우, 그에 따른 책임을 피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보험업계 안팎에선 중소형 보험사를 중심으로 자본조달 경색 우려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롯데손보보다 신용등급이 낮은 보험사들까지 투자자 신뢰 약화의 영향을 받을 경우 신종자본증권 발행이나 후순위채 재조달이 어려워지는 ‘도미노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당국은 이번 사태가 2022년 흥국생명의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미이행 사태와는 다르다고 보고 있다. 당시 흥국생명은 외화채권(5억 달러) 콜옵션을 예고 없이 미이행해 외국인 투자자의 신뢰를 무너뜨렸고, 레고랜드 사태와 맞물리며 시장 전체를 뒤흔든 바 있다. 반면 롯데손보는 규모(900억 원)가 작고, 투자자도 대부분 국내 기관투자가로 구성돼 있어 직접적인 시장 충격은 제한적이라는 게 당국의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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