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무구조도’ 개정 지배구조법 시행 후 4건 발생
‘외부인 사기’ 9건…허위 서류 거를 시스템 부재 원인
사고 재발 방지 위한 은행권 내부 시스템 정비 시급

은행권이 횡령사고 재발방지를 위한 노력에도 사고가 끊이지 않았던 이유는 내부통제 제도가 ‘책임 회피용’에 그쳤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사전적 사고 대응에 큰소리를 쳤지만 통제 책임은 모호했고 시스템은 사후대응에 머물렀다는 얘기다. 반복되는 사고에도 조직 차원의 실질적 책임은 부재했고, 경영진의 통제 리더십도 작동하지 않으면서 사고 수법만 갈수록 정교해졌다는 지적이다.
6일 은행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에서 올해 공시한 금융사고는 총 12건으로 집계됐다. 사고금액은 총 811억 원. 이달 2일에만 국민·하나은행에서 총 84억 원을 웃도는 규모의 사고 4건이 적발됐다.
이중 개정 지배구조법의 시행일인 지난해 7월 3일 이후 발생한 금융사고는 국민은행에서 두 건, 하나·농협은행에서 각각 한 건씩이다. 사고금액은 총 135억 원을 넘는다. 임원의 내부통제 책임을 명시한 책무구조도 도입 등 금융권 내부통제 강화를 위한 개정법 시행 이후에도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책무구조도 시범운영 기간에도 국민은행과 하나은행에서 한 건씩 사고가 터졌다. 금융위원회는 책무구조도 도입 활성화를 위해 지난해 10월 31일부터 금융감독원이 책무구조도를 점검하고 자문 컨설팅을 수행하는 시범운영 기간을 가졌다. 은행권에서의 책무구조도 이해도가 어느 정도 올라온 시기에도 사고가 난 것이다.
‘내부통제 강화’를 여러 차례 외친 뒤에도 금융사고가 발생·적발된 것은 내부통제 제도개선안 마련 초기였던 2022년에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사모펀드 불완전판매, 직원 횡령 등 사고가 잇따르자 금융위는 8월부터 태스크포스(TF)를 운영했다. 금융지주사와 은행 수장들도 이듬해인 2023년 신년사에서 일제히 ‘내부통제 개선을 통한 금융사고 예방’ 노력을 강조하고 나섰다. 그러나 같은 해 금융사 자체 징계 또는 금감원 제재 조치가 이뤄진 횡령사고는 총 25건으로 은행권에서만 18건이었다. 해당 연도에 보고 접수된 횡령사고 10건 중 7~8건이 은행에서 발생한 셈이다.
지난해 3월 5일에는 농협은행에서 대출계약서와 실 대출액이 109억 원가량 차이 나는 과다대출 사고가 적발됐다. 같은 달 13일 국민은행에서는 담보로 잡힌 상가의 가치를 실제 할인 가격이 아닌 최초 분양 가격 기준으로 대출을 실행해 약 104억 규모의 부당대출이 발생했다.
횡령 방식도 고도화하고 있다. 올 3월 금감원이 적발한 IBK기업은행 금융사고의 경우, 전직 직원이 차명으로 부동산 중개업소와 법무사 사무소를 운영하면서 기업은행 현직 임직원 28명과 공모하거나 도움을 받아 7년간 785억 원의 부당대출을 받았다. 은행 임직원들은 대출 관련 증빙 서류 등을 허위로 작성한 전직 직원의 부당행위를 묵인하고 금품을 받기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은행권 관계자는 “임직원 한 명이 대출 서류를 위조해서 돈을 가지고 잠적하는 것이 그간 금융사에서 흔히 발생하는 횡령 방식이었다면, 기업은행 건은 법인을 설립하고 지점장, 심사센터장 등 임직원에게 청탁하는 등 긴 시간 조직적으로 횡령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한 명의 일탈이 아닌 은행 내부통제 체계 자체가 미작동한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외부인에 의한 사기’ 금융사고가 잇따라 적발되는 추세다. 일부 은행이 “해당 외부인 형사고소밖에 할 수 있는 조치가 없고 은행에 책임을 묻기 어렵다”며 내부통제 책임을 회피하는 양상도 보인다. 5대 은행이 올해 공시한 금융사고 12건 중 9건이 ‘외부인에 의한 사기’로 집계됐다.
일각에서는 은행권 내부통제 신뢰도를 낮추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은 국민의 자산 보호와 가장 밀접하게 연결된 금융기관으로 사고가 미치는 피해 규모나 영향력이 보험사, 여신전문금융사 등에 비해 크다”며 “외부인의 의한 사기 역시 대출 서류 확인 절차 강화 등 내부통제 시스템의 사각지대는 없는지 확인해야 하는 문제이지 ‘내부 직원이 아닌 외부인의 행각’이라는 사실 자체가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