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비트 거래소 해킹 사건 이후 잠잠하던 가상자산 시장에 다시 한번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바로 실물자산연계(RWA) 기반 레이어1 블록체인 만트라(OM) 코인이 그 주인공인데요. 여기서 실물자산이란 부동산, 국채 등을 뜻하며, RWA란 이를 토큰화해 일반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투자 접근성을 쉽게 만들어주는 프로젝트죠.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만트라 코인은 13일 오전 1시(이하 한국시간) 기준 6달러 초반에서 거래가 이뤄졌는데요. 4시간 후인 오전 5시께 갑작스레 0.4325달러로 급락한 것이죠.
이로 인해 시가총액이 50억 달러(한화 7조 원) 이상 증발했는데요. 전체 시가총액의 90% 이상이 증발하며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의견이 분분한데요. 우선 만트라 측의 입장을 들어보겠습니다.
만트라 측은 러그풀(개발자 주도의 대량 매도)이나 해킹이 발생한 것은 아니며, 중앙화거래소(CEX)에서 발생한 갑작스러운 대규모 청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존 멀린 만트라 CEO는 이날 오전 8시께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CEX가 만트라 계좌 보유자들을 대상으로 무모하게 강제 청산을 하면서 사태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번 사태는 해킹이나 내부자 매도가 아닌, 외부에서 발생한 강제 청산 때문"이라고 해명했죠.
일각에서는 의도적인 러그풀이라는 의혹이 빗발치고 있습니다.
일부 온체인 전문가들은 가격 폭락 이틀 전 만트라의 지갑 중 하나가 프로젝트의 핵심 투자사인 레이저 디지털의 지갑으로 4000만 달러(약 567억 원) 상당의 OM을 중앙화 거래소로 입금한 것으로 확인된 것이죠.
다만 레이저 디지털은 SNS를 통해 "우리는 OKX에 OM을 입금한 적 없다. 우리가 보유 중인 OM은 여전히 락업 상태"라고 반박했습니다.
이 시점에 멀린 CEO는 국내에 체류 중이었는데요. 14일 여의도에서 열린 '비트콘 RWA 서밋'(BTCON RWA Summit)에 참여해 기조연설과 패널 토론에 나설 예정이었죠. 이날 그는 사태 수습을 위해 기조연설과 패널 토론에 모두 불참했다고 하는데요. 다만 바이낸스가 직접 마진콜에 의한 청산을 인정하면서 러그풀 의혹에서는 벗어나고 있습니다.
만트라는 올해 초 중동 시장 진출과 함께 10억 달러 규모의 실물자산 토큰화 계약을 체결하고 두바이 가상자산 규제기관(VARA)으로부터 정식 라이선스를 취득하는 등 공격적인 확장을 추진 중이었는데요. 어쨌거나 이번 폭락으로 해당 사업뿐 아니라 시장 내에서 RWA 프로젝트에 대한 신뢰성을 떨어트렸죠.
만약 만트라 측의 해명이 맞다면 '포지션에 의한 대거 청산'이라는 사건 자체는 오랜만에 발생한 것이지만, 결과론적으로 폭락 자체는 하루 이틀에 걸친 일이 아닙니다.
시장이 성장하면서 각종 사기 혐의로 폭락을 불러온 루나·테라 사태, 러그풀을 비롯해 수많은 의도적인 폭락 사태들이 항상 뒤따라왔는데요.
가장 일반적인 폭락은 벤처캐피탈(VC) 주도의 토큰 엑시트입니다.
이는 사기 혐의로 취급하기도 어려워 매번 투자자들이 당하고 있는데요. 이들 VC는 프라이빗 세일 기간에 특정 프로젝트의 토큰을 시중가보다 말도 안 되는 가격에 구매한 뒤 CEX 상장 시점에 대량으로 매도하며 큰 이익을 취하죠.
프로젝트팀이 사전 공지 없이 물량을 이동하는 사례도 자주 볼 수 있는데요. 대표적인 레이어2 프로젝트 아비트럼의 경우, 자체 토큰의 10%를 임의로 재단에 할당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크게 비판받았죠.
여기에 이미 토큰 일부를 현금화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투자자들은 충격을 금치 못했는데요. 유명 VC의 투자를 받고, 최고의 개발진을 보유한 프로젝트마저 투자자들의 신뢰를 한순간에 깨트린 대표적인 사건이죠.
하지만 VC를 비롯해 프로젝트팀이 이러한 비난을 받고서라도 이를 단행하는 이유는 단 하나인데요. 이 같은 방식이 가상자산의 특성이라는 것이죠.
일반적으로 기업공개(IPO) 과정을 걸치면서 엑시트를 할 때 상당히 오랜 시간이 필요한데요. 가상자산 프로젝트는 1년 안에 이 모든 일을 끝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기관 투자자들은 가능한 한 빠르게 결과를 보는 것을 선호하는데요. 초반에 투자한 뒤 백서와 함께 프로젝트를 구축하고, 중앙화 거래소에 상장하면 됩니다. 그렇게 되면 개미 투자자들이 몰리게 되면서 초기 투자자들의 잔치가 열리게 됩니다.
이 과정을 합법적으로 제지할 수단은 없는데요. 이렇게 무분별한 엑시트 전략이 빗발치면서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현상도 심화했다는 비판입니다.
더 심한 프로젝트의 경우 마켓메이커와 결탁해 가격을 조작하는데요. 간혹 이들이 시장 가격에 손대면서 문제가 커지고 있습니다.
디파이언트캐피털 설립자 아서 청은 "CEX가 이러한 상황을 완전히 외면하는 가운데 알트코인 시장의 신뢰도가 점점 더 떨어져 레몬마켓(판매자와 소비자 간 보유 정보의 차이로 인해 품질에 문제가 있는 저급품이 유통되는 상황)이 되고 있다"며 "올해 대다수의 토큰 가격이 상장 후 몇 달 만에 70~90% 폭락했다. 관련 투자자는 모두 큰 손해를 본 셈이다. 업계가 나서서 이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시장의 상당 부분은 투자할 수 없는 상태로 남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죠.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고 있다 보니 투자자 피해는 전 세계적으로 늘어나는 추세인데요. 최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 캐롤라인 크렌쇼가 최근 열린 가상자산 태스크포스 회의에서 전반적인 시장의 투자자 보호 시스템에 강한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그는 "대부분 가상자산 거래 플랫폼이 어떠한 규제 기관에도 등록돼 있지 않으며, 브로커리지, 청산, 커스터디 기능이 단일 기업 내에 통합돼 있다"며 "많은 투자자들이 거래소 파산 시, 맡긴 가상자산이 거래소 자산으로 간주한다는 사실을 모르며,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나 증권 투자자 보호 공사(SIPC)의 보험 적용을 받지 못한다는 점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국내에서도 이러한 문제가 대두하고 있는데요. 투자자의 자금을 멋대로 유용한 델리오나 하루 인베스트 사태가 대표적이죠.
이에 투자자 피해 보상에 대한 법률적 제도 마련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내 디지털 자산 거래소의 국제 경쟁력 세미나' 개회사에서 "우리는 그동안 불투명한 시장 운영과 제도적 미비로 인해 투자자 보호가 취약한 구조를 내버려 뒀다"고 언급했는데요.
이어 "수이, 어베일 사태에서 보듯 일부 프로젝트들은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거래소에 상장됐고, 투자자들은 사전 정보 없이 '설거지 코인'에 희생당하는 상황이 반복됐다"고 강조했죠.
그러면서 "디지털 자산 시장이 신뢰를 잃지 않고 건전한 금융 시스템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 국회의 역할이다. 거래소의 투명성 강화를 위한 책임을 강화하고, 감독 기구의 감시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구축해야 하며, 투자자 보호 체계를 확립하는 '한국형 규제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과연 기관이 주도하는 엑시트의 시대에서 빠르게 투자자 보호 방안이 마련될 수 있을까요? 가상자산 산업이 더욱 성장하기 위해서라도 법제적 장치가 필요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