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간 2.6조 쏟아내
SK하닉·현대차·LG엔솔·삼바 등 대형주 대거 매도
삼성전자가 올해 1분기 ‘깜짝 실적’을 냈지만, 외국인 투자자의 외면은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관세 부과를 중심으로 한 대외 변수가 개별 기업 실적 흐름을 압도하는 상황이다.
1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은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11일까지 삼성전자 주식을 11거래일 연속 순매도했다. 그 규모는 2조6491억 원에 달한다. 같은 기간 개인(1조8474억 원), 연기금(2593억 원)이 삼성전자에 뭉칫돈을 쏟은 것과 대조적이다.
삼성전자는 1분기 잠정 실적으로 매출이 79조 원, 영업이익이 6조6100억 원으로 집계됐다고 8일 밝혔다. 이는 영업이익 기준 시장 컨센서스(4조9613억 원)보다 33% 이상 큰 규모다. 삼성전자 어닝서프라이즈가 시장 회복세에 단초를 제공할지 주목됐지만, 외국인 투자심리 개선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한 모양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단행한 글로벌 관세를 향한 공포심이 외국인의 위험회피 심리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고질적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겪는 한국 증시는 전 세계 증시 중에서도 리스크가 큰 곳으로 분류된다. 이에 국내 증시 대장주로 꼽히는 삼성전자까지 대거 던지며 탈출을 가속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은 삼성전자뿐 아니라 여러 대형주 물량도 잇따라 풀고 있다. SK하이닉스(-2조6491억 원), 현대차(-7074억 원), LG에너지솔루션(-3257억 원), 삼성바이오로직스(-2397억 원), POSCO홀딩스(-2066억 원), 한화오션(-1730억 원) 등을 시장에 내놨다.
증권가는 미국발(發) 관세 충격이 삼성전자에 미치는 영향은 시장 우려보다는 적을 것으로 전망한다. 디램(DRAM), 낸드(NAND) 등 메모리 반도체는 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된 데다 디램 모듈과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의 미국 수출 비중이 적다는 이유에서다.
김동원·이의진 KB증권 연구원은 “메모리 반도체는 매출 비중이 낮은 소비자용 디램 모듈과 SSD에만 관세가 부과되며, 소비자용 디램 모듈과 SSD는 필리핀, 베트남 공장에서 생산해 미국 수출 비중은 전체 매출의 1.6%에 그친다”고 설명했다.
다만 특정 기업 성과가 시장 전체에 미치는 온기는 여전히 제한적일 것으로 보이며, 대내외 거시적 요소에 더 주목해야 할 시점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재원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상호관세가 90일간 유예됐지만, 자동차·철강 25% 관세와 전 세계 10% 보편관세, 대중 관세 145% 부과 등은 이어져 불확실성이 단기에 해소되기는 어렵다”고 관측했다.
김성근·조윤경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미국은 중국의 유화적 스탠스를 기다리는 모습이지만, 중국은 최근 고위급 회담에서 아시아 내 경제협력과 공급망 강화를 논의하는 등 장기전에 대비하는 모습”이라며 “미국 기업 중 중국 노출도가 높은 반도체 장비와 테크 하드웨어, 전력 산업재, 에너지 등이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