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진 서울대병원 교수 “비급여 처방수단에 그치면 곤란” [인터뷰]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한시적으로 도입된 비대면진료가 점차 일상적인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인구 구조의 변화, 감염병 대응, 의료 접근성 향상 등을 고려하면 비대면진료 제도화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는 것이 정부와 의료계의 전망이다.
하지만 도입 방향성과 세부적인 규제 방안에 대한 혼란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어, 사회적 합의와 정책이 필요한 실정이다.
본지는 최근 권용진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교수로부터 비대면진료를 둘러싼 논쟁들과 제도화를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를 들었다. 권 교수는 지난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보건복지부가 공동 주관한 ‘비대면의료 이용자 편의성 제고를 위한 기술적 방안 마련’ 연구를 진행했고, 대한디지털헬스학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권 교수는 ‘비대면진료’의 개념부터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사와 환자가 디지털 기기만으로 소통하고 의약품을 처방하는 방식은 기존에 없었던 서비스인데, 감염병 확산 상황에 시급하게 도입되면서 정부와 의료계 모두 명확하지 않은 용어를 계속 사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권 교수는 “비대면진료는 팬데믹 시기 급조된 임시적 용어로, 정확히는 ‘원격의료’라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원격의료가 의료법 제34조에 의료인과 의료인 사이에 이뤄지는 의료행위로 정의돼 있어, 이 용어는 사용할 수 없다”라며 “이제 비대면진료라는 표현 자체를 사용하지 말고, 원격진료라고 표현하는 것이 개념적으로 옳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원격진료는 원격기술을 이용한 다양한 의료행위 중에 의사의 진찰을 의미한다”라고 부연했다.
현재 시범사업으로 허용되는 원격진료는 단순히 편리한 도구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 권 교수의 시각이다. 환자가 필요한 전문의약품을 빨리 손쉽게 구하도록 돕는 수단으로만 쓰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참여 약사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탈모·미용 치료 및 관리(49%)가 환자들의 주목적 1위를 차지했다.
권 교수는 “현재는 환자의 편의성만 강조되고 있는데, 주로 감기약을 처방받거나 만성질환 재진환자가 쉽게 처방을 받기 위해, 모발관리나 비만관리 비급여 의약품을 처방받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다”라며 “이는 대면진료를 해도 매우 짧은 시간이 소요되는 분야이며, 기술의 관점에서 봐도 전화진료가 주를 이루기 때문에 디지털전환이라고 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발전된 디지털기술 적용을 고려하면, 원격진료에는 원격모니터링과 인공지능 분석이 결합할 것”이라며 “중증환자 및 급성합병증의 위험이 있는 환자들의 모니터링에 주로 활용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용자들의 증가세와 대조적으로 의사들은 여전히 원격진료에 대한 반감이 크다. 지난해 2월부터 초진 환자까지 원격진료가 전면 허용되면서 서비스 악용과 환자 안전에 대한 불안이 증폭됐다. 지난해 10월에는 국내에 막 출시된 비만치료제 ‘위고비’가 원격진료를 통해 무분별하게 처방되자, 대한의사협회는 성명을 내고 “비대면진료 전면 허용을 즉각 중단하고 ‘재진 환자를 대상으로 대면진료’ 원칙 하에 운영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 위고비는 지난해 12월부터 원격진료를 통한 처방이 금지된 상태다.
권 교수는 “의사들로서는 현재 원격진료가 주로 전화로 이뤄져 환자의 얼굴을 보지 않고 처방을 하니 불안한 것이 당연하다”라며 “전화진료를 금지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환자들도 전화를 통해 의사와 대화를 잘할 수 있을지, 앱을 잘 사용할 수 있을지, 처방전이 약국에 잘 전달될지 등 불안감을 느낄 요소가 있다”라며 “본인의 상태가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환자들은 대면진료를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설명했다.
권 교수는 “전체 원격진료를 화상진료 방식으로 전환하고, 원격모니터링을 함께 수행하도록 한다면 의사들의 불안감도 많이 사라질 것”이라고 제안했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전문의약품 오남용 문제는 정부 규제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권 교수의 견해다. 의사들의 자율적인 가이드라인과 제재가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권 교수는 “의사가 오용한다는 것은 오진을 한다는 의미이고, 남용한다는 것은 비윤리적이라는 의미”라며 “오용이 있다면 의사가 소송을 당하고 처벌받게 될 일이고, 남용이 있다면 의사집단 스스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자율규제해야 할 일”이라는 말했다.
이어 그는 “학회의 진료가이드라인을 따르지 않는 경우 의사협회 윤리위원회에 회부하고 징계해야 할 일이지, 정부가 규제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다만, 현재 국내에서 원격진료가 비급여 처방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어서 발전방향이 잘못됐다는 문제의식은 있다”라고 했다.
원격진료 정식 도입을 위해서는 법과 제도 모두 재정비해야 한다는 것이 권 교수의 제안이다. 의료법의 원격의료개념을 ‘원격기술을 활용한 의료행위’로 정의하면, 원격진료(비대면진료), 원격협진, 원격모니터링, 원격상담 등을 포함할 수 있다. 아울러 전화진료를 막고, 디지털 기술 결합을 적극 추진해 원격진료 수준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권 교수는 “전화진료는 디지털전환으로 보기 어려우며 의사들의 불안을 높이고 의료서비스의 질을 하락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어 화상진료를 원칙으로 해야 한다”라며 “원격진료를 원격모니터링과 인공지능 등과 적극적으로 결합하면 거동장애를 가진 환자의 홈케어처럼 보다 고차원적인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다만, 이런 변화를 전제로 수가 시스템이 재설계 될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권 교수는 진취적인 시범사업 확대와 문제점 발굴을 주문했다. 그는 “역사가 증명하듯이 기술의 발전을 거스르긴 어렵다. 기술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인간성 상실이 나타나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라면서 “원격진료로 인해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지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없어서 ‘원격의료 부작용신고센터’를 운영하면서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찾고 해결해 나갈 필요가 있다”라고 힘줘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