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이커머스 성장에 대형마트 사양길
생존 건 구조조정에 규제는 ‘여전’
3월 초 홈플러스가 전격적으로 기업회생을 신청하면서 그 배경과 원인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기업회생은 법원이 주관하여 금융채권과 상거래채권을 포함한 모든 채무를 조정하는 강력한 공적 수단으로, 부도 위기에 처한 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 선택이다.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을 신청함에 따라 작년의 티메프(티몬·위메프)에 이어 중소 납품업체와 입점 소상공인들이 대금을 받지 못하는 정산 사태가 또다시 발생할 것이 우려되었다.
국내 대형마트 2위인 홈플러스가 부실하게 된 직접적 원인으로 과다한 부채를 꼽는다. MBK파트너스는 2015년 홈플러스를 인수할 때 대금 7조2000억 원 중 5조 원을 대출로 조달했다. 이 대출에 대한 이자 비용으로 홈플러스가 지급한 금액이 총 2조9329억 원으로 영업이익의 몇 배에 달한다.
대형마트에 대한 촘촘한 규제도 홈플러스의 영업력을 제한해 자금난을 가중시켰다. 현재 대형마트는 오전 10시부터 자정까지만 영업할 수 있으며 월 2회 의무적으로 휴업해야 한다. 홈플러스의 경우 의무 휴업으로 인한 매출 감소분이 연간 1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본다.
재무위험과 영업규제가 홈플러스의 몰락을 가져온 것은 사실이지만, 보다 더 중요한 원인은 대형마트가 사양업종으로 전락했다는 것에 있다. 온라인 이커머스가 급성장하여 오프라인 대형마트의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는 가운데 재무구조가 빈약한 홈플러스가 먼저 무너진 것이다.
홈플러스 사태는 유통업 구조조정의 신호탄을 예고한다. 우리나라 유통업은 고비마다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겪었다. 과거에 대형마트가 등장하며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이 쇠퇴했고 이제는 대형마트가 온라인 이커머스에 의해 쇠락하는 운명을 맞이하는 것이다.
홈플러스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나라 유통업 구조조정의 변천과정을 알 수 있다. 홈플러스는 외환위기 이후인 1999년에 삼성물산이 설립했다. 당시 국내에 신업태로 도입된 대형할인점이 빠르게 성장하자 삼성그룹은 홈플러스를 통해 유통사업에 뛰어들었다.
삼성그룹이 2세 경영으로 넘어가며 1997년에 신세계를 계열 분리한 다음 다시 홈플러스를 설립해 유통사업을 시작한 점이 흥미롭다. 1993년에 최초의 대형마트를 출점해 선점자 지위를 굳힌 이마트와 후발로 진입해 1위 자리를 노리는 홈플러스는 혈투를 피할 수 없었다. 이마트와 홈플러스는 사촌 기업이지만 승자독식의 논리가 작용하는 유통업에서 정면으로 맞붙게 되었다.
우리나라 유통시장이 개방되며 2000년대 초반에 전 세계 유통업의 절대 강자들이 다 한국시장에 진출했다. 미국의 월마트, 프랑스의 까르푸, 독일의 메트로, 영국의 테스코 등이 모두 한국 시장에 들어와 승부를 겨루었다. 테스코는 2001년 삼성물산과 합작하여 홈플러스 지분 81%를 인수해 진입했고 대대적인 투자를 통해 전국적으로 매장을 확대하여 업계 2위 자리를 차지했다.
대부분의 외국 유통업체들은 국내 시장과 소비자를 이해하지 못해 고전했지만, 홈플러스는 삼성물산의 인력과 노우하우를 이용해 독보적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다. 삼성이 자동차 산업을 포기하며 사업구조 조정 차원에서 유통업도 접으며 2003년 테스코가 홈플러스 지분 100%를 인수하게 되었다.
2000년대 중반에 국내외 유통업체 간의 경쟁이 과열되고 규제가 강화되며 대형점포의 확장과 영업에 제동이 걸렸다. 유통산업의 성장이 둔화됨에 따라 취약한 업체들이 퇴출당하며 대대적 구조조정이 이루어졌다. 2006년에 월마트와 까르푸 등의 외국 유통업체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한국 사업을 매각하며 철수했다. 진로, 해태, 나산, 거평, 청구 등의 중견기업들은 유통사업에서 입은 손실로 인해 기업이 공중분해되기도 했다. 2000년대 중반의 구조조정 여파로 대형마트와 백화점은 상위 3개 업체가 점유율 90%가량을 차지하는 독과점체제로 전환됐다.
외국계 유통업체로 유일하게 살아남은 테스코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2011년에 홈플러스를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에 넘겼다. 외환은행을 인수하고 재매각해 천문학적 이익을 올린 바로 그 론스타이다. 론스타는 한국에서 철수하며 2015년에 홈플러스를 국내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에 매각했다. 이처럼 홈플러스의 주인은 ‘삼성물산-테스코-론스타-MBK’로 네 차례나 바뀌었고 앞으로 또 바뀔 것이다.
나머지 유통업체들도 어떤 운명에 처할지 아무도 모른다. 쿠팡의 작년 매출은 41조 원을 돌파해 대형마트 전체 판매액(37조 원)을 넘어섰다. 제조업과 달리 유통업의 매출은 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경쟁사의 매출을 빼앗아 오는 것이다. 앞으로 쿠팡이 얼마나 더 성장하고 대형마트는 어디까지 수축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유통업의 구조조정은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미국에서도 아마존과 월마트가 전방위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그 틈에 니만마커스, 시어스 로벅, 토이저러스 등 유수한 유통업체들이 도태됐다. 시대적 변곡점에서 생존을 건 서바이벌 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는 격언이 생생하게 와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