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 절대 오지 마"…나무 자르고 세금 올려받는 나라들, 왜? [이슈크래커]

입력 2025-01-21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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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홋카이도 삿포로 비에이 마을의 유명 관광명소 크리스마스 트리를 한 남성이 바라보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27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돼 설 연휴가 엿새로 늘었습니다.

여기에 일부 대기업은 '샌드위치 휴일'인 31일도 지정 휴무나 권장 휴무로 정하는데요. 이 경우 최대 9일간 휴가를 보낼 수 있어 여행 수요가 급증하고 있죠. 국내 여행은 물론 해외여행을 계획하는 이들도 숱합니다.

뜨거운 햇볕 아래 시원한 바다를 즐길 수 있는 휴양지는 떠올리기만 해도 즐겁고요.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야시장에서 간식을 사 먹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영화 '러브레터'(1995)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설원도 겨울철 대표적인 관광지로 꼽힙니다.

그런데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간과해선 안 될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세계 곳곳의 관광지에 심상치 않은 변화가 찾아오고 있다는 건데요. 인증 사진 수십 장을 찍어줘야 하는 핫플레이스 속 나무가 돌연 잘려나가는가 하면, 이전엔 없었던 세금이나 입장료를 내야 하고, 지도 속 경로가 사라져 국제 미아(?)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이어지고 있죠.

이웃 나라인 일본부터 낭만적인 신혼여행지 인도네시아 발리, 미식의 도시 스페인 등 한 나라에 국한되는 일도 아닙니다. 아무런 정보 없이 해외여행에 나섰다가 관광지 앞에서 발걸음을 돌리는 불상사도 벌어질 수 있죠.

▲14일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에서 자작나무 수십그루가 벌목됐다. (출처=STV 뉴스 보도화면)

삿포로 비에이 마을, '패치워크 로드' 벌목했다…9년 전에도 나무 '댕강'

겨울철 대표적인 해외여행지는 일본 홋카이도입니다.

일본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인 홋카이도는 봄에는 푸른 풍경이, 여름에는 보랏빛 라벤더 꽃 물결이, 가을에는 울긋불긋한 단풍이 펼쳐지는 곳인데요. 특히 겨울엔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 그야말로 설국(雪國)으로 거듭납니다.

이 중에서도 일본 5대 도시 중 하나인 삿포로에 많이 가는데요. 비행시간이 2시간 30분 정도로 그리 길지 않은 데다가 풍부한 자연경관과 맛집을 갖추고 있어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높은 관광지입니다.

삿포로에 갔다면 빼먹어선 안 될 명소도 있습니다. 바로 비에이 마을인데요. 잘 정돈된 형형색색의 밭들이 마치 조각 천을 이어 붙인 것 같다고 해서 이름이 붙은 '패치워크 로드'와 광활한 풍경의 '파노라마 로드'가 특히 유명하죠.

그런데 최근 파노라마 로드를 장식하고 있던 자작나무가 몽땅 사라졌습니다. 불과 이달 13일까지만 해도 설원의 오솔길을 따라 심겨 있던 자작나무들은 이튿날인 14일 잘려나간 채로 길가에 놓여 있어 관광객들의 충격을 자아냈는데요. 나무를 베어버린 건 다름 아닌 주민들이었습니다.

14일 일본 STV뉴스에 따르면 이날 오전 현지 주민들은 자작나무 가로수를 벌채했습니다. 굴착기 등을 동원해 나무를 모두 베어버린 후 이를 길가에 가지런히 정리해뒀는데요. 독단적인 결정이 아닌, 협의 끝에 내린 결단이었죠.

주민들이 아름다운 가로수를 베자고 결정한 건 '관광객' 문제가 주된 영향을 줬습니다. 이곳에서 인증 사진을 찍기 위해 관광객들이 차도를 막고, 농작물을 심은 밭에 무단으로 들어가는 등 주민들의 생활에 직접적인 피해를 준 건데요. 한 주민은 매체에 "트랙터 등 대형 기계로 길을 다니는 경우도 있어서 정말 위험하다. 조금만 조작을 잘못해도 사람을 치지 않을까 두려웠다"고 토로했습니다.

여기에 자작나무 가로수가 밭에 그늘을 만들어 농작물 성장에 피해를 주기도 하는 만큼, 부근 농가들이 마을과 협의한 후 벌채에 이르렀다는 설명입니다.

주민들이 관광객 때문에 나무를 베어버린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철학의 나무'도 같은 이유로 사라진 바 있습니다. 언덕 위 나무 한 그루만이 비스듬히 서 있는 풍경이 유명해지면서 '고독의 나무'로도 불렸는데요. 배우 소지섭이 출연한 카메라 광고에도 출연한 나무입니다. 한국에서는 이른바 '소지섭 나무'로 알려졌죠. 관광객들이 몰려들면서 밭이 짓밟혔다는 이유로 이 나무도 2016년 잘려나갔습니다.

담배 마일드세븐 광고에 나오면서 유명세를 탄 '마일드세븐 언덕'도 이젠 과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능선을 따라 일자로 나무들이 줄지어 있었으나, 농가에서 대부분 나무를 벌채하면서 밍숭맹숭한 언덕이 돼버렸죠.

이제 유력한 희생양(?)은 삿포로에서 가장 핫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크리스마스 나무'입니다. 이곳 역시 사유지인데, 관광객이 몰리면서 땅을 침범하는 피해가 잇따르면서 4개 국어로 '사유지 접근 금지'를 알리고 있습니다. 경계선을 넘어가면 센서가 작동해 경고 방송까지 나오죠. 이곳의 땅 주인도 벌목을 고려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STV뉴스에 따르면 인구 1만 명도 안 되는 이 마을엔 지난해 239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했다고 합니다. 사유지 무단 침입과 불법 주차, 교통 정체 등으로 주민들의 생업까지 피해를 본 사실이 전해지면서, 온라인 커뮤니티 등지에서는 "나무는 안됐지만 나라도 벌목하겠다" 등의 반응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5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발리의 한 해변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쓰레기를 줍고 있다. (AP/연합뉴스)

관광객 몰려들자…'쓰레기섬' 전락한 발리, 세금 올려 받는 유럽

관광객에 몸살을 앓는 건 일본만이 아닙니다. 신혼여행지로 유명한 인도네시아 발리는 쏟아지는 쓰레기에 감당이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최근 자카르타 포스트 등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발리를 찾은 내·외국인 관광객은 총 1496만여 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11%가량 늘었습니다. 앞서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겪으면서 관광객이 크게 줄었지만, 2023년부터 급증하기 시작해 최근에는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한 상황이죠.

문제는 관광객이 한순간을 기점으로 대폭 늘면서, 주요 관광지가 몰려있는 발리 섬 남부에 쓰레기가 넘쳐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매년 발리에서 발생하는 쓰레기 160만 톤(t) 가운데 30만t이 플라스틱 쓰레기인데요. 관광객이 만들어내는 쓰레기 양은 주민이 만드는 쓰레기의 3배가 넘는 수준입니다.

특히 썩지 않는 플라스틱 쓰레기는 매년 3만3000t이 수로를 통해 바다로 빠져나갑니다. 한때 온라인상에서 플라스틱 쓰레기로 뒤덮인 발리 남부 케동가난 해변의 모습이 확산 했습니다. 현지인과 호텔 직원, 관광객 자원봉사자 등 600여 명이 투입돼 해변 청소에 나섰는데요. 일주일 동안 이 해변에서 수거된 쓰레기만 25t이라고 합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지난해 2월부터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1인당 15만 루피아(한화 약 1만3410원)의 관광세를 물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금액도 부족하다며 올리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는데요. 관광세만으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며 새 호텔이나 숙박시설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발리주 정부는 인도네시아 중앙 정부에 2년 동안 주요 관광지에 신규 호텔과 리조트, 나이트클럽, 비치 클럽 등의 건설 허가 중단을 요구했고요. 인도네시아 정부는 발리 섬 북부 지역에 또 다른 공항을 건설하고 이곳을 개발해 제2의 싱가포르로 만들면서 발리 남부에 몰려 있는 관광객을 북부로 분산하겠다는 계획입니다.

그런가 하면 유럽 각지에서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세금 폭탄'을 부과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유럽관광협회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관광세를 징수하는 유럽 내 도시가 150곳으로 늘어났다고 합니다.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등은 수차례 관광세를 인상해왔고요. 그리스는 내년부터 대표적인 관광지 산토리니, 미코노스 섬을 크루즈로 방문하는 승객에게 20유로의 세금을 부과합니다. 노르웨이와 영국도 과잉 관광에 대응하기 위해 관광세 도입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는데요. 스코틀랜드의 수도이자 제2도시인 에든버러에선 이미 관광세 도입이 사실상 확정된 상황입니다. 올해 7월부터 모든 숙박객을 대상으로 5%의 추가 부담금을 징수할 예정이며, 이를 통해 연간 5000만 파운드(한화 약 880억 원)의 세수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보이죠. 이는 영국에서 관광세가 시행되는 첫 사례가 될 전망입니다.

▲지난해 7월 6일(현지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시민들이 관광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해 7월 6일(현지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라스 람블라스 골목에서 대규모 관광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린 가운데, 시위 참여자들이 한 레스토랑 창문에 '출입 금지' 테이프를 붙였다. (AFP/연합뉴스)

수용 능력 한계 이른 관광지…'안티 투어리즘' 확산까지

이들 지역의 공통점은 지나치게 많은 관광객들로 인해 현지 주민들의 일상이 침범당한다오버투어리즘 논란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는 겁니다.

일례로 지난해 스페인에 간 관광객은 약 9400만 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스페인 인구가 약 4800만 명인 점을 고려하면 인구 두 배에 육박하는 관광객이 스페인으로 몰려들었다는 건데요. 특히 바르셀로나는 연간 평균 3200만 명이 방문합니다. 도시의 크기는 한정적인데 관광객들이 끝없이 몰려들면서 거리는 혼잡해졌고, 물가와 임대료는 껑충 뛰었으며, 대마초나 질 낮은 기념품을 파는 길거리 상점이 급속도로 증가하면서 주민들의 한숨을 자아냈습니다.

이에 바르셀로나에선 구글 지도상 일부 버스 노선을 아예 삭제해버리는가 하면, 관광객을 반대하는 시위까지 벌어졌습니다. 지난해 여름 바르셀로나 도심 곳곳에서 관광 반대 집회가 열렸는데요. 참여자들의 손에는 "관광객들은 집에 가라", "바르셀로나는 판매용이 아니다" 등 문구가 적힌 팻말이 들려 있었죠.

관광객에게 물총을 쏘며 직접 항의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식당이나 카페 테라스에 자리 잡거나 거리를 걷는 관광객들에게 달려가 물총을 쏘고 다닌 건데요.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상당수 관광객은 이를 '장난'으로 받아들였지만, 언쟁이 벌어지기도 했죠. BBC 등 취재진 카메라엔 물총 세례에 당황해 식당 테라스를 떠나는 관광객의 모습도 포착됐습니다. 외국 관광객을 혐오하는 안티투어리즘(Anti-tourism)까지 우려되는 상황이었죠.

당시 마르티 쿠소 바르셀로나 고딕지역 주민 협회 대변인은 "우리는 도시의 경제 모델이 다른 훨씬 더 공정한 경제를 우선시하길 원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관광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는데요. 당국 차원의 규제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2023년 기준 관광업은 스페인 국내총생산(GDP)의 12.8%를 차지할 정도로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죠.

스페인을 비롯해 세계 각지에선 관광세·입장료·과태료를 부과하거나 인상하는 등 나름의 대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액의 부담금을 징수하는 정도로는 수요 억제 효과가 제한적이라 오버투어리즘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데요. 뚜렷한 대안이 없는 상황 속, 주민의 일상 유지를 명목으로 더욱 높은 비용과 책임을 요구하는 명소들은 늘어날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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