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굴기 힘 실어주는 中…한국은 보조금 ’0원’ [트럼프 2기, K제조업 다시 뛴다]

입력 2025-01-2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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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넘어 ‘미국 유일주의(America Only)’ 정책을 표방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 공식 취임했다. ‘트럼프 노믹스’ 시즌2가 현실화한 것이다. 트럼프 1기 때 미·중 무역갈등으로 시작된 자유 무역주의 쇠퇴가 가속화하고, 글로벌 무역전쟁은 더 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보호무역주의 기조와 중국 견제 정책이 강화되면서 한국 제조업은 중대한 도전에 직면했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SK그룹 회장)이 연초 경제계 신년 인사회에서 “경제에 있어 가장 큰 공포는 불확실성”이라고 밝힌 것처럼 국내 제조업들이 체감하는 불안감은 최고조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있다. 특히 한국 경제가 살아나기 위해선 제조업의 경쟁력 회복이 절실하다. 이에 이투데이는 트럼프 행정부 2기를 맞아 격화될 글로벌 제조업 경쟁 속 우리 기업의 현 주소와 생존 전략을 살펴보고, 다시 도약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모색한다. <편집자주>

#이차전지 소재를 개발하는 A사는 최근 생산라인 증설 계획을 무기한 연기했다. 이익 규모가 크지 않은 데다 업황마저 좋지 않아 무리하게 투자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A사 관계자는 “적자가 나거나 영업이익이 충분하지 않으면 투자세액공제를 10년간 이월할 수 있지만, 예측이 어려운 업황 회복 시점을 가정하고 대규모 투자를 하기에는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A사는 개발한 소재를 다른 시장으로 확장할 수 있을지 살펴보고 있다.

‘저가’와 ‘공급 과잉’을 앞세워 한국 제조업을 위협하던 중국은 이제 첨단 기술력까지 갖추고 세계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의 반도체, 배터리, 태양광, 철강, 조선 등 주요 품목 수출량은 전년 대비 40~6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모두 우리나라 기업이 강점을 갖고 있던 분야다.

중국의 제조업 굴기가 날로 막강해지는 배경에는 ‘중국제조 2025’에 기반한 중국 정부의 전폭적 지원이 있다. 인공지능(AI), 신에너지차, 반도체 등 10대 핵심산업을 육성하고, 핵심 부품과 재료 국산화율을 7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게 골자다.

중국 정부는 중국제조 2025 계획을 발표한 2015년부터 10년간 대대적인 연구개발(R&D) 투자, 보조금 등을 통해 ‘기술 굴기’를 추진했고, 세계 시장 점유율은 물론 기술 경쟁력까지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중국과 달리 한국은 직접적인 지원책이 전무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경제인협회 분석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2023년부터 반도체 기업 SMIC에 2억7000만 달러의 보조금 지급을 시작했고, 지분 30% 이상을 보유한 대주주로서 정부 주도의 투자를 지원했다. 하지만 한국의 보조금은 ‘0원’으로 조사됐다.

이차전지와 디스플레이도 상황은 비슷하다. 중국 정부는 CATL에 보조금 8억1000만 달러를 비롯해 연구개발 특별자금, 인프라 구축 등을, BOE에는 4억2000만 달러의 보조금에 토지·건물 무상 제공, 지방정부 출자를 지원했다.

우리나라는 간접적 지원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조세특례제한법에 따라 기업이 투자한 금액 일부에 대해 세액공제를 해준다. 납부할 세금이 없거나 세액공제 혜택 규모보다 세금이 적으면 혜택을 받지 못하는 구조다. 향후 10년간 이월공제도 가능하지만, 비용 부담에 따라 투자 적기를 놓칠 가능성도 크다.

산업계는 첨단산업 경쟁이 국가 간 경쟁으로 확대되고 있고,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첨단산업 특성상 보조금 등 직접적인 기업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투자세액공제액을 현금으로 환급해주는 직접환급제가 대표적이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급격한 기술 발전과 공급망 재편에 선제적이고 효과적인 대응이 필요한 시점에 이들 첨단산업에 대한 투자는 안보는 물론 재편되는 글로벌 공급망에서 한국이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는데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해외 주요국도 이러한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세액공제액을 전부 현금으로 지급하거나 제3자에게 양도할 수 있도록 했다. 프랑스는 지난해 3월 첨단산업 분야에 대한 투자액에 법인세를 제하고 남은 공제액을 현금으로 돌려준다. 같은 해 6월 캐나다는 청정기술 관련 투자액의 최대 30%를 현금으로 환급해주는 제도를 도입했다.

중국의 저가 공세로 시름하는 전통 제조업들은 생존의 골든타임을 지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해 8월 국내 제조기업 2228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27.6%는 중국의 저가 수출로 인해 ‘실제 매출·수주 등에 영향이 있다’고 답했다. ‘현재까지는 영향이 없으나 향후 피해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를 나타낸 기업도 42.1%에 달했다.

첨단산업뿐만 아니라 전통 제조업 역시 정부 차원의 ‘메스’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지난해 말 정부는 기업활력법에 석유화학 업종을 포함해 규제를 완화하고, 총 3조 원 규모의 정책금융을 지원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석유화학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후속 조치로 상반기까지 업계 의견을 듣고 사업 재편에 속도를 낸다.

일각에서는 정부 주도의 빅딜(통폐합) 없이는 위기 극복이 어렵다고 토로한다. 한 관계자는 “과거 일본 사례처럼 정부가 주도해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고부가 중심으로의 사업 구조 전환을 위한 적극적 지원도 필요하다”고 전했다. 다만 기업마다 주력하는 시장이 다르고,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쉽지 않다는 반론도 있다.

정부는 올 초 ‘친환경차·이차전지 경쟁력 강화방안’에 이어 상반기 내 선박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철강 산업에 대한 경쟁력 강화 방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또 반도체특별법, 사용후 배터리 산업 육성 지원법 등 첨단산업 지원을 위한 법적 기반도 마련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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