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이는 尹 대통령 탄핵사유…차벽에 인간띠 두르고 영장집행 거부

입력 2025-01-04 14:25수정 2025-01-04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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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정치적 책임” 대국민 사과 어디로…진정성 의문

[‘12‧3 비상계엄 해제’ 한 달]
경호처 방해…체포영장 집행 불발
총장 때 지적했던 ‘사법방해 행위’
‘헌정질서 수호’ 취임 선언과 배치

특검수사‧수색 거부한 朴 전 대통령
“국민과의 약속조차 지키지 않았다”
헌재, 파면 근거로 결정문에 적시도

# 서울 용산구 한남동 공관 구역 정문에서 윤석열 대통령 관저 건물까지는 500m가량 언덕을 올라가야 한다. 공조수사본부 윤 대통령 체포팀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검사‧수사관 30여 명에 경찰 120여 명이 합류해서 150명 넘는 규모로 꾸려졌지만, 대통령 경호처가 세 겹으로 방패막이를 둘러 막아섰다.

대형 버스와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군사경찰단의 전술 차량으로 구축된 1차에 이어 2차 저지선을 돌파하는 데 1시간 30여 분이 소요됐다. 체포팀 진입을 겹겹이 저지하는 경호처와 몸싸움 끝에 가까스로 대통령 관저 정문에서 200m 지점까지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3일 오전 9시 50분께 이들 앞에 3차 저지선이 또 나타났다. 공수처 관계자는 “이번엔 대형 버스나 승용차 등 10대 이상이 진입로를 완전히 막고 있었다”며 “경호처 직원과 군인들 200여 명이 벽을 쌓고 있어 도저히 뚫고 가기가 불가능했다”라고 전했다.

같은 날 오전 8시 4분 공관 구역 정문을 통과해 초유의 현직 대통령 체포 영장 집행을 개시한지 5시간 26분 만에 공수처는 오후 1시 30분쯤 더는 영장 집행이 힘들다고 판단, “체포팀보다 많은 인원이 집결한 상황에서 안전 우려가 커 집행을 중지한다”고 밝혔다. 방어 진지를 구축하듯 차벽을 세우고, 팔짱을 낀 채 스크럼을 짜 ‘인간 바리케이드’를 친 경호처에 가로막힌 것이다.

▲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집행하기 위해 나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검사‧수사관들을 태운 차량이 3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입구에 도착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윤석열 대통령 체포 영장 집행에 나선 3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경내에서 대통령 경호처 인원들이 철문 앞을 차량으로 막고 있다. (연합뉴스)

▲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윤석열 대통령 체포 영장 집행에 나선 3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경내에서 공수처 수사관들이 내려오고 있다. (연합뉴스)

4일 ‘12‧3 비상계엄’이 해제된 지 한 달을 맞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 사태’가 벌어진지 나흘만인 7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국민들에게 불안과 불편을 끼쳐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많이 놀랐을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면서 “저는 이번 계엄 선포와 관련해 법적‧정치적 책임 문제를 회피하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피청구인은 2016년 10월 25일 제1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면서 국민에게 사과했으나 그 내용 등은 객관적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진정성이 부족했다. 이어진 제2차 대국민 담화에서 피청구인은 제기된 의혹과 관련하여 진상 규명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하고 검찰 조사나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도 수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검찰이나 특별검사의 조사에 응하지 않았고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도 거부하여 피청구인에 대한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위와 같이 피청구인은 자신의 헌법과 법률 위배행위에 대하여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는 대신 국민을 상대로 진실성 없는 사과를 하고 국민에게 한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이 사건 소추 사유와 관련하여 피청구인의 이러한 언행을 보면 피청구인의 헌법수호 의지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 ‘대통령 박근혜 파면’ 2016헌나1 결정문)

▲ ‘12‧3 비상계엄 사태’ 지휘 체계도. (그래픽 = 손미경 기자 sssmk@)

“‘헌법 준수‧수호의무’ 법치국가 원리서 당연파생”

法 위반 있을 때 대통령 파면 결정
“손상된 헌법질서 회복에 중대한지
국민신임 저버렸는지” 판단 정해야

경호처 방해로 체포 영장 집행이 불발됐다. 검찰총장 출신 윤 대통령이 검사 재직 때부터 심각하게 문제 삼아온 ‘사법방해 행위’에 해당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헌법 제69조 ‘헌법 준수 의무’를 내건 대통령 취임식 선언과 배치된다. 헌법재판소는 2017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사유로 사법당국 영장 집행 거부를 ‘대통령에게 헌정질서 수호 의지가 부족하다’고 봐 탄핵 근거로 결정문에 적시했다.

이 때 헌재는 “‘헌법을 준수하고 수호해야 할 의무’가 법치국가 원리에서 파생되는 지극히 당연한 것임에도, 헌법은 국가의 원수이자 행정부의 수반이라는 대통령의 막중한 지위를 감안하여 제66조 제2항 및 제69조에서 이를 다시 강조하고 있다”고 판시했다. 헌법 66조 2항은 ‘대통령은 국가의 독립‧영토의 보전‧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고 규정한다.

“어떠한 법 위반이 있는 경우에 대통령에 대한 파면 결정을 할 것인지는 파면 결정을 통하여 헌법을 수호하고 손상된 헌법질서를 다시 회복하는 것이 요청될 정도로 대통령의 법위반 행위가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중대한 의미를 가지는지, 또는 대통령이 자신에게 부여한 국민의 신임을 임기 중 박탈해야 할 정도로 법위반 행위를 통하여 국민의 신임을 저버린 것인지를 판단하여 정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해 파면을 결정하면서 헌재가 명확히 한 탄핵 판단 기준이다.

당시 안창호 헌법재판관은 보충 의견에서 “대통령은 국민 모두에 대한 ‘법치와 준법의 상징적 존재’인 것”이라며 “이에 따라 대통령은 헌법을 수호하고 실현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할 뿐만 아니라, 법을 준수하여 현행법에 반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라고 설명했다.

지도자가 위법한 행위를 했어도 용서한다면 어떻게 백성에게 바르게 하라고 하겠는가(犯禁蒙恩何爲正).

특히 안 재판관은 옛 성현 지적을 인용하면서 “대통령을 비롯한 지도자의 준법을 강조하는 말이다. 따라서 대통령의 법위반 행위는 일반 국민의 위법 행위보다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크다고 할 것이므로 엄중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래픽 = 손미경 기자 sssmk@)

“대통령의 법위반 행위, 엄중하게 대처해야”

지도자 준법…일반국민 위법 행위보다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 큰 탓
“8인 판결, 오히려 피청구인에게 유리”

일찍이 플라톤은 50대에 저술한 「국가」에서 “통치하는 것이 쟁취의 대상이 되면, 이는 동족간의 내란으로 비화하여 당사자들은 물론 다른 시민들마저 파멸시킨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플라톤의 경고는 우리가 권력 구조의 개혁을 논의하는데 있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아모스 5장 24절).

헌재는 8인 재판관 만장일치로 2300여 년 전 고전부터 성경 구절까지 결정문에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결정문을 마무리한다.

“불법과 불의한 것을 버리고, 바르고 정의로운 것을 실천하라는 말씀이다. 이 사건 탄핵 심판과 관련하여 국민간의 이념적 갈등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 사건 탄핵 심판은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적 가치를 실현하고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문제이다. 그리고 이 사건 탄핵 심판은 단순히 대통령의 과거 행위의 위법과 파면 여부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헌법적 가치와 질서의 규범적 표준을 설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윤 대통령 측 변호인단에게 2017년 3월 10일 ‘대통령 박근혜 탄핵’ 헌재 결정문(2016헌나1) 정독을 권한다.

윤 대통령 변호인은 탄핵 소추 자체가 무효라는 주장까지 내놓고 있다. 앞서 박 전 대통령 측 변호인 역시 국회 탄핵 소추 자체가 위법하다는 반론을 폈다. 헌재는 ‘대의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국민을 대표하는 입법 기구인 국회 결정은 삼권분립 원칙상 존중돼야 한다’는 취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한 8인 재판관 결정은 피청구인의 ‘9인으로 구성된 재판부로부터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논리에 관해서는 “탄핵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하는데 결원 상태인 1인의 재판관은 사실상 탄핵에 찬성하지 않는 의견을 표명한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 오므로, 재판관 결원 상태가 오히려 피청구인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점에서 피청구인의 공정한 재판받을 권리가 침해된다고 보기도 어렵다. 따라서 이 부분 피청구인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아니한다”고 일축했다.

박일경 기자 ek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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