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채무 비용 부담‧원자재값 상승 등
원재료 가격 올라도 판매가 못올리고
“1500원 넘어가면 심리적 저항선 무너질 것”
원·달러 환율이 치솟으면서 기업들의 경영 시계가 안개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원자재를 수입하면서 발생하는 비용 부담과 이에 따른 생산 비용이 상승하며 산업계 전반의 수익성이 악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특히 환율 대처 능력이 떨어지는 중소기업들은 1500원 대를 넘어가면 심리적 저항선이 무너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2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이 완전히 해소되기 전까지는 달러 강세(환율 상승)가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산업연구원은 실질실효 환율이 10% 하락하면, 대규모기업집단의 영업이익률은 0.29%포인트(p) 하락할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또한, 대규모기업집단의 수출전략이 기술경쟁으로 변하면서 원화 가치 하락에 의한 매출 효과가 사라진다고 판단했다.
전문가들은 환율이 올라가면 수출기업들의 일시적으로 ‘환차익’에 따른 수익 증가가 일어나지만, 실제로는 시장 예측 불확실성 때문에 경영 리스크로 작용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라고 분석했다.
이동은 고려대 국제대학‧국제대학원 교수는 “금융시장에서 가장 큰 리스크는 불확실성으로, 기업의 장기적인 투자 입장에서 환율 상승은 큰 타격을 준다”며 “환율 변동성이 심하면 기업들의 장기 계획 수립에 어려움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수출을 위해 원자재나 로열티를 해외에서 사와야 하는데, 환율이 높아지면 이를 들여오는 비용 자체가 너무 높아지고 투자에서도 환율이 올라가며 (은행 이자 등) 비용이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산업계 중에서도 특히 석유화학과 철강, 이차전지 등 원자재와 원료 수입 비중이 높은 기업들이 상당한 피해를 입을 것으로 보인다. 원재료를 들여올 때부터 비용이 크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항공사들은 항공기 리스 비용이나 항공유를 구매할 때 달러로 계산한다. 환율이 올라가면 비용 부담도 커지고 실적은 나빠질 수밖에 없다.
이차전지 업계도 환율 상승세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등 배터리 업체들은 최근 해외에 공장을 잇달아 짓고 있는데, 환율이 올라가면 외화 부채를 갚을 때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정유 업계는 글로벌 경기와 환율 등과 연동되는 대표적인 업종이다. 원유 전량을 해외에서 달러로 사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원유를 미리 대량으로 사두고, 몇 달 뒤 달러로 결제하는 방식으로 거래가 이뤄지는데 결제 시점의 환율 상승분이 환차손으로 들어온다. 환율이 오르면 환차손이 증가하는 구조다.
중소기업들도 환율 상승에 따른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원재료 가격이 오르면 납품 가격도 올려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경북 칠곡에 있는 한 제조 중소기업은 “기존 진행 중인 계약 건에 대해 환율이 오르니 상대 업체 쪽에서 단가를 계속 낮추려고 하거나 계약을 지연, 보류하려 한다”고 밝혔다.
천안에 있는 볼트·너트 제조 중소기업은 환율이 상승하면서 일본에서 수입하는 원자재 비용이 높아져 채산성 악화로 이어질까 우려하고 있다.
특히 국내 정치적 리스크가 겹치면서 중소기업의 어려움은 커지고 있다. 경기도의 검사·측정설비 제조기업은 “비상계엄 전날 송장을 받아 결제를 앞두고 있었는데, 하루 사이 갑자기 환율이 올라서 손해가 발생했다”고 호소했다.
추문갑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지금처럼 환율이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급격하게 인상되면 중소기업들의 피해가 크다”며 “전 세계적으로 강달러 문제라면 이해가 가지만, 정치 불안이 더해져 우리나라만 더 지나치게 절하되는 게 문제”라고 밝혔다.
그는 “고환율로 원자재 비용이 올라도 지금과 같은 경기 불황기에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기업도 시장 반발이 크기 때문에 가격을 못 올린다”며 “대기업에 납품하는 경우도 납품 단가 연동제가 도입되긴 했지만, 환율이 올랐으니 가격을 올려달라고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추 본부장은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이 넘어가면 심리적 저항선이 무너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