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세법案에 巨野 의지 담길 듯…건전재정도 위기
내수부진, 미국 트럼프 정부 출범에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까지 맞물리면서 한국 경제를 둘러싼 한파도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윤 대통령 탄핵안 가결은 일단 가까스로 피했지만 국정동력과 대외신인도에 치명상을 입은 만큼 정부 역점 경제정책도 힘을 받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에 대형 악재가 겹치면서 내년 1%대 저성장은 물론 장기 불황 국면에 들어설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7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윤 대통령 탄핵안 표결 전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주재로 1급 이상 간부회의를 열고 탄핵 정국 관련 대응 방안 등을 논의했다.
최 부총리는 표결 결과와 관계없이 내년 경제정책방향 등 굵직한 정책 발표, 국회 심의 중인 내년도 예산안 등 불확실성 최소화 등을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재부 고위관계자는 "'기재부가 경제 컨트롤타워로서 무슨 일이 있어도 해야 할 것은 다 해야 문제가 안 생긴다', '경제 역학과 정치 역학은 다르다'는 것이 부총리의 변함없는 기조"라며 "모든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탄핵안은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정족수 미달로 표결이 성립되지 않았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이 재추진을 예고한 만큼 대통령 거취를 둘러싼 잡음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당장 정부가 역점 추진한 연금·의료·교육·노동 등 4대 개혁 동력도 크게 약화한 데다 현재 국회로 넘어간 내년도 예산안과 세법개정안은 과반 의석에 정국 주도권까지 확실하게 쥔 민주당의 의지가 더욱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50%→40%), 반도체 산업 지원을 위한 반도체 기업 통합투자세액공제율 5%포인트 상향 등 주요 경제정책도 뒷전으로 밀릴 가능성이 높다.
전 국민 민생지원금 등 확장재정을 요구해 온 민주당의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압박으로 윤석열 정부의 일관된 건전재정 기조도 선회 기로에 놓일 것으로 보인다.
고금리 장기화 등으로 이미 얼어붙은 소비와 투자도 계엄·탄핵 여파에 따른 부정적인 영향이 미칠 전망이다.
소비 동향을 보여주는 대표적 내수 지표인 소매판매액지수는 올해 3월(-3.4%·전년동월대비)부터 10월(-0.8%)까지 8개월째 하락했다. 공사 실적을 금액으로 환산한 건설기성(불변)은 올해 10월 기준 전월대비 4% 줄며 6개월째 감소세를 보였는데, 대통령 탄핵 이슈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크게 높아지면서 소비·투자심리 모두 위축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가결된 것보다는 충격이 덜하겠지만 경제정책을 제대로 추진하기 어렵기 때문에 국민과 기업이 소비와 투자에 부담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내년 성장률도 기존 전망보다 더욱 하향 조정될 공산이 크다.
한국개발연구원(KDI)와 국제통화기금(IMF)은 내년 우리나라 성장률 전망치를 각각 2.1%, 2.2%에서 2.0%로, 한국은행도 2.1%에서 1.9%로 각각 내렸다. 아세안+3 거시경제조사기구(AMRO)는 전날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1.9%로 예상했다. 1%대 저성장을 전망한 AMRO와 한은 등은 고강도 관세전쟁을 예고한 미 트럼프 정부 출범에 따른 불확실성을 경제 전망에 반영했지만, 내년에 미 트럼프 정부의 보편관세 공약이 도입되기 어렵다고 본 KDI는 전망에 반영하지 않았다.
국내외 주요 경제기관의 경제 전망에 계엄·탄핵 정국에 따른 경제 효과가 반영될 경우 성장률 추가 하락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글로벌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피치'는 6일(현지시간) 보고서에서 "탄핵 정국 속에서도 한국 신용은 견고하지만 정치적 불확실성이 장기화할 경우 신용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경제매체 포브스도 같은 날 한국 계엄 사태에 대해 "계엄 사태의 대가는 한국 5100만 국민이 분할 지불하게 될 것"이라며 "윤 대통령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주장하는 투자자들이 옳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이어 "중국 경제둔화, 미국 정권교체 등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 한국이 이번 사태로 정치적 마비 사태에 적절히 대응할 수 없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며 "매우 불확실한 내년을 맞이하기에 충분히 나쁜 상황"이라고 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는 불확실한 걸 싫어한다. 위기가 확정돼도 확실하면 헤쳐나갈 수 있는데 현 상황에서는 시장에서 생길 수 있는 다양한 변수에 대한 대응 능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통령이 남아 있다면 예산안 합의도 어려울 수 있다"며 "통치 능력이 없는데 통치권을 휘두르는 상황이어서 계속해서 예측 불가능한 결정이 이뤄질 것이고 해외 투자자도 비슷하게 느낄 것이다. 정치, 경제, 사회가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