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희 사단법인 무의 이사장
이 연구조사를 공유하며 딸의 경험이 생각났다. 학교는 어찌어찌 다녔지만 방과후 학원이나 놀이터에 갈 수 없어서 또래들과 어울리는 경험으로부터 통째로 배제되곤 했다.
이런 일상적 배제를 보고 ‘참고 넘어가지’라고 쉽게 말할 수도 있지만 사실 그 정도의 수준이 아닐 수도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와 장애인이다!”라는 소리를 들은 경험이 있는 휠체어 이용자는 당장 당혹스러운 정도가 아니라 사람에 따라서는 ‘엘리베이터에서 사람을 마주치기 두렵다’는 생각까지 이어진다. 은근히 휠체어 입장이 싫다는 눈치를 주는 식당 주인을 마주하면 ‘나는 환영받지 못하는구나’라는 생각 때문에 외출이 위축된다. 외출하기가 두려워지면 사회적 활동을 하기 힘들어진다. 더 나아가서는 출퇴근이 필요한 일을 하는 것에도 제약을 받는다.
이동권이 학습권과 노동권을 위축시킨다는 주장은 그전부터 있었다. 그런데 이런 권리 위축이 실제로 어떻게 건강에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연구는 드물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더라도 외출이 위축되면 운동할 물리적 기회도 줄고 의욕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 연구는 그런 ‘기회 상실’이 ‘의욕 상실’로 이어지고 결국 건강 악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밝히겠다는 취지다.
건강 악화는 개인의 불행이고 가족의 부담이자 사회적 부담이다. 무엇보다 외출을 꺼리게 되면 ‘낯선 이들 앞에 나서는 불안감’이 커진다. 정신적 건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이 설문조사를 보면서 얼마 전 일본 나고야 여행을 다녀왔을 때가 기억났다. 나고야의 큰 쇼핑센터나 대형 빌딩의 장애인화장실에는 일반 세면대 옆에 거의 예외없이 낯선 세면대 하나가 있었다. ‘장루요루 세척기’다. 세척기를 보자마자 얼마 전 만났던 장루-요루장애인협회 담당자가 생각났다. 이들 장애인들은 대소변에 문제가 있어서 장루, 요루 주머니를 차고 다녀야 하는지라 외출을 극도로 꺼린다고 한다. 언제 어디서 신변처리의 문제가 발생할지 모르는데 처리할 수 있는 적절한 시설이 설치된 화장실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의 장루요루 장애인들은 훨씬 더 많이 외출하고 한국에 비해 건강이 더 나을 것이라는 짐작이 들었다.
일찍이 장애를 보는 관점을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을 떠나 ‘사회적 장애’로 보는 관점이 정책에 수용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제6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2023~2027)’에 의학적 장애로 규정했던 ‘장애’의 개념을 사회적 장애로 확대했다. 이런 경우 등록장애뿐 아니라 일시적 장애도 장애로 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런 관점이 확대되기 위해서는 우선 물리적으로 등록장애든 일시적 장애든 다른 몸을 가진 사람들을 길에서 수월하게 볼 수 있게 하는 시설부터 갖춰야 한다. 시설 투자를 위해서는 사회에서의 배제가 개인의 건강 악화, 나아가 사회적 손실을 야기한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기업 차원에서도 일시적 장애로 장애개념이 확대됨에 따라 다양한 몸을 배제하는 것이 어떤 사회적 손실을 야기하는지에 대한 연구 그리고 이에 대한 시설 투자가 결국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지름길임을 알고 적극 관심을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