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상과 현실 간극 확인한 플라스틱 ‘빈손’ 회의

입력 2024-12-02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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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부터 1일까지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플라스틱 오염 종식 국제협약(플라스틱 협약) 성안을 위한 제5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INC-5)가 빈손으로 막을 내렸다. 루이스 바야스 발비디에소 의장은 1일 오후 전체회의에서 “쟁점을 효과적으로 해결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추후 협상위를 재개해 마무리 짓기로 전반적인 합의가 이뤄졌다”고도 했다. 결국 앞으로 합의를 하기로 합의하는 데 그쳤다는 것이니, 여간 허탈한 결과가 아니다.

부산 회의는 플라스틱 감축을 위한 법적 구속력 있는 논의의 장으로 기대를 모아왔다. 지난달 24일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폐막한 유엔기후변화협약 제29차 당사국총회(COP29) 5차 협상위가 기후 대응을 위한 선진국 분담금 규모만 연간 최소 3000억 달러로 확대하는 원론적 합의를 했을 뿐 재원 조달 방안 등 구체적 복안을 찾지 못했던 터라 기대감은 더욱 컸다.

지구촌은 앞서 2022년 5월 유엔환경총회(UNEP)에서 플라스틱 협약을 만들기로 하고, 2년간 4차례 협상을 거듭했다. 이런 배경으로 보면 이번에 플라스틱 생산부터 폐기까지 전 주기를 다루는 협약이 나와야 마땅했다. 하지만 씁쓸하게도 가시적 성과는 없다. 협상 시한인 1일을 넘겨 2일 새벽까지 논의가 이어졌으나 별무성과였다. 선언적 협약조차 도출되지 못했다. 플라스틱 규제가 필요하다는 이상과 그 비용을 어떻게 감당하느냐 하는 현실 사이에 큰 간극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새삼 곱씹게 된다.

합의 실패를 부른 가장 큰 요인은 플라스틱 생산물질 폴리머 규제를 둘러싼 견해차였다고 한다.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와 같은 산유국들은 규제를 요구하는 다수 의견에 강력히 반발했다. 이로써 플라스틱과 폴리머 생산 규제, 유해 플라스틱·화학물질 퇴출, 협약 이행을 위한 재원 마련 방안 등 3대 쟁점에 모두 물음표가 찍혔다.

플라스틱은 현대 문명을 지탱하는 물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 산림과 금속 광산이 거덜 나지 않은 것은 상당 부분 플라스틱 덕분이란 시각도 있다. 하지만 환경 파괴라는 다른 얼굴도 있다. 화석연료 추출 화학물질이 99%인 플라스틱은 1950년대부터 90억t 생산된 것으로 추산된다. 바다와 강 등에 유출돼 지구촌 건강을 해치고 있다.

플라스틱 협약은 분명히 가야 할 길이다. 하지만 단칼에 해결한다는 희망은 섣부르다. 급진적 규제는 가능하지도 않고, 잃을 것도 너무 많다. 한국은 중국, 미국,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합성수지(플라스틱) 4대 생산국이다. 1인당 폐기물 배출량은 2021년 기준 OECD 2위다. 플라스틱 의존도를 낮추는 노력을 배가하되 합리적·절충적 접근을 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6월 조티 마투르 필립 INC 사무국장은 본지가 주최한 ‘서울 기후·에너지 회의(CESS) 2023’에서 “적절한 정책조합 시행으로 플라스틱 순환경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낙관했다. 플라스틱 순환경제의 시장 규모는 2030년까지 7000억 달러 규모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그 방향으로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다만 과속은 금물이다. 차분하고 신중하게 길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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