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Kㆍ영풍과의 경영권 분쟁 속 ‘국가 안보’ 명분 확보
정부가 고려아연의 이차전지 전구체 원천 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했다.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기업을 외국에 매각하려면 정부의 승인이 필요한 만큼, 고려아연은 MBK파트너스·영풍과의 경영권 분쟁에서 이를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18일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주 전문위원회 심의를 거쳐 고려아연이 신청한 특정 전구체 제조 기술이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한다고 확인 통보했다고 밝혔다. 또한, 산업부는 이 기술을 국가첨단전략산업 법에 따른 국가첨단전략기술에 해당한다는 판정도 함께 내렸다.
국가핵심기술은 국내외 시장에서 차지하는 기술적·경제적 가치가 높거나 성장 잠재력이 높아 해외로 유출 시 국가 안보와 경제 발전에 중대한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어 정부가 특별 관리하는 기술이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전기ㆍ전자, 조선, 원자력 등 70여 건의 기술이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돼 있다.
국가첨단전략기술을 가진 기업은 개발 부담금 감면, 공장 인허가 단축 등의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고려아연은 “이번 판정으로 순수 국내 기술로 이차전지 핵심 소재인 전구체의 국내 자급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구축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관련 법령에 따라 해당 기술에 대한 해외 유출 보호 조치를 본격적으로 실시한다”며 “국내 이차전지 소재의 핵심 광물 공급망 다양화를 통해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배터리 산업의 경제 안보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고 했다.
앞서 고려아연은 MBK·영풍과의 경영권 분쟁이 진행되던 9월 24일 정부에 자사의 전구체 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인정해달라고 신청했다. 경영권 방어를 위해 내세운 ‘국가기간산업 보호’라는 명분을 강화하는 한편, 사모펀드인 MBK가 차익 실현을 위해 중국 등 외국에 자사를 매각하는 시도를 어렵게 만들기 위한 행보로 해석됐다.
이번 판정에 따라 고려아연이 해외 기업에 매각하거나 합작 투자 등 외국인 투자를 진행하려면 산업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향후 MBK 측이 차익 실현을 위해 고려아연 재매각에 나서기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MBKㆍ영풍의 고려아연 경영권 인수 시도가 불가능해지는 건 아니다. MBK는 자사를 중국계 자본이 아닌 ‘한국 토종 사모펀드’로 규정하면서 해외에 매각하지 않을 것이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다만 고려아연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추진한 2조5000억 원 규모의 일반공모 유상증자 계획이 무산된 가운데, 정부의 이번 결정이 국민연금과 일반 주주를 비롯한 ‘제3의 주주’ 설득에 힘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