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근 칼럼] 노벨 경제학·문학상에 투영된 대한민국의 두 얼굴

입력 2024-10-20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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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ㆍ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눈부신 경제성장 이끈 ‘제도의 힘’
아픈 현대사 왜곡된 인식으로 논란
자유주의 확신 없이 번영 지속못해

2024년 노벨상은 한국과 인연이 깊다. 경제학상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로 잘 알려진 매사추세츠공과대(MIT) ‘다론 아제모을루’ 교수 외 2인에게 돌아갔다. 이들은 ‘한국경제의 번영’을 제도적 관점에서 연구한 학자다. 한국의 성공사례가 그들에게 노벨상의 영예를 안긴 것이다. 그리고 문학상은 한국의 여류작가 ‘한강’에게 돌아갔다.

경제학상을 보자. 사회과학은 ‘실험’이 불가능하고 ‘관찰’만 가능하다. 하지만 남북한 경제력 차이에 대한 연구는 예외다. 한 나라였던 한국이 1948년을 계기로 남북으로 갈라졌다. 남북한은 각기 다른 체제를 선택해 건국했다. 경제적으로 초기 조건은 북한이 남한보다 훨씬 유리했지만, 현재 북한에 대한민국의 경제력은 ‘넘사벽’이 됐다. 무엇이 이 같은 극적인 반전을 가져왔는가? 언어 문화 인종 등 모든 것이 같았기에 유일한 차이인 ‘체제와 제도’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

이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은 경제 제도를 ‘포용적 제도’와 ‘착취적 제도’로 구분하고 한국의 성공을 ‘포용적 제도’의 도입으로 설명했다. 포용적 제도는 ‘사유재산을 보호하고 부당한 공권력의 개입과 위력에 의한 재산 착취를 방지하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경제 활동에 자유롭게 참여’하는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반면 착취적 제도는 모든 것이 국가 소유로 되어있어 개인소유가 허용되지 않는 체제이다. 내 것이 없으니 노력의 결과가 내 것이 될 수 없어 최선을 다할 이유가 없다. 국가의 지시를 좇으면 된다. 정치가 경제를 압살하면 유인(誘因)이 사라져 경제는 성장할 수 없다. 북한이 그 전형이다. 그만큼 ‘제도(institution)’가 중요한 것이다.

‘포용적 제도’는 학술적 조어(造語)로 뿌리를 찾아가면 자유주의 철학자 ‘하이에크’에 닿는다. 포용적 제도는 ‘자신의 처지를 개선하려는 인간의 본성’을 개념화한 것이다. 예컨대 햇볕이 좋고 강수량이 풍부하면 풍년이 든다. 하지만 인간이 자연조건을 통제할 수는 없기에 어떤 해는 흉년이 든다. 결국 ‘지리적’으로 농사가 잘되는 예컨대 온대지역을 중심으로 농업이 번성한다. 제도환경은 자연환경과 달리 인간의 지식과 지혜의 산물이다. 시장이 스스로 잘 작동하게 끔, 기본 조건 즉 ‘법과 질서’를 친시장적으로 만들어줘야 한다.

한국은 개발연대에 자원동원을 위해 부분적으로 ‘관 주도 성장전략’을 채택했지만 이내 ‘관치의 옷’을 벗고 포용적 제도를 통해 경제 번영을 이룩했다. 한국경제의 성공을 가져온 ‘제도의 힘’에 대한 분석에 노벨경제학상이 수여됨으로써 자유주의 체제의 우월성이 ‘실증’된 것이다.

2024년 노벨문학상은 여류작가 ‘한강’에게 수여됐다. 노벨위원회는 그녀의 작품을 ‘역사적 트라우마를 직시하고 인간 삶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평가하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그녀는 ‘육체와 영혼, 생과 사의 관계에 대한 고유한 통찰을 통해 역사적 상처와 인간의 연약함’을 탐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 한강의 역사 인식은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2017년 뉴욕타임스의 “미국이 전쟁을 말할 때, 한국은 전율한다”란 제하의 기고문에서 그녀는 ‘6·25전쟁은 인접한 강대국들에 의해 일어난 대리전’이었다고 기술해 역사를 왜곡했다. 6·25전쟁의 진실은 김일성이 소련을 등에 업고 한반도를 적화통일하기 위해 남침(南侵)한 전쟁이었다. 개전 초기 미국은 전투태세를 미처 갖추지 못해 죽미령 전투에서 북한군에 패했다. 그녀는 미군이 남한 난민을 ‘숭고한 인격체’로 인식했다면 ‘노근리’에서 수백명을 학살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국군과 미군을 살인광으로 몰아갔다.

그녀는 “평화가 아닌 것은 어떠한 의미도 없으며 승리는 공허한 구호이며, ‘또 다른 대리전’을 원하지 않은 사람들이 지금 이 한반도에 살고 있다”면서 미국을 호전적 국가로 매도했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였다. 북한은 2017년에 핵실험을 진행했으며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를 통해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과시하려 했다. 그렇게 그녀의 역사인식은 중립적이지 않다. 1948년 제주 4·3사태가 수습되지 않아 그해 5월에 총선을 치르지 못했다면, 1980년 광주사태가 그 정도에서 수습되지 않았다면 ‘3저 호황과 세계화’의 이점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부끄러운 한국, 자유주의 체제에 대한 확신이 결여된다면 대한민국의 번영은 불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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