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모바일뱅킹 이용·주식 관심 '↑' 금융 성장성 큰 인니 [K-금융, 퀀텀점프②]

입력 2024-10-15 05:00수정 2024-10-15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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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니 현지 금융시장 핵심 키워드는
‘QR·모바일 뱅킹·금융투자 성장성’

동남아시아 모든 공항에서 우리나라 금융회사의 광고를 찾는 것이 어렵지 않은 시대가 됐다. 1967년 한국외환은행(현 하나은행)이 동경, 오사카, 홍콩지점을 동시 개설하면서 해외에 첫 깃발은 꽂은 지 58년 만이다. 물론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하지만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한국 금융사들은 단 한번도 멈추지 않았다. 꾸준한 인수합병(M&A)으로 영토를 확장했고 점포도 늘렸다. 신사업 기회도 놓치지 않았다. 글로벌 경기 부진과 현지 기업들의 성장으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일시적인 부침을 겪고 있으나 그 동안 뿌렸던 씨앗은 언제든 수확할 수 있는 열매로 자라났다.
최근 세계로 비상하는 ‘K산업’을 통해 또 한번 도약의 기회를 맞았다. 금융당국도 금융사의 해외 진출 지원을 위해 각종 규제를 없애며 힘을 실어주고 있다. ‘퀀텀 점프’할 준비가 돼 있는 한국 금융사들의 글로벌 전략을 짚어본다.

▲인도네시아 중앙 자카르타에서 내려다 본 전경. 금융사 건물이 모여 있다. (유하영 기자 haha@)

인도네시아 수카르노 하타 국제공항에서 차로 40분 걸려 이동한 중심 도시 중앙자카르타. 9월 하순임에도 푹푹 찌는 날씨에, 뒤엉켜 있는 오토바이와 차들이 뿜어내는 매연과 미세먼지까지 더해져 마른 기침이 연신 나올 정도로 탁한 공기가 전신을 에워쌌다. 대표적인 ‘상업금융도시’라는 이름에 걸맞게 거리에는 높고 화려한 빌딩 건물들이 줄지어 있었다. 인도네시아 현지 금융기관뿐 아니라 글로벌 은행, 증권사 건물들이 줄줄이 늘어섰고 화려한 광고판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중앙 자카르타에서 남부 자카르타로 이동하는 차창 밖 거리에는 OK뱅크, INA 뱅크, 만디리(Mandiri)은행, 신한은행, HSBC 등의 간판을 단 높은 타워들이 눈을 깜빡이거나 고개를 좌우로 돌릴 때마다 시야를 가득 채웠다.

한국의 대표 금융사들이 대거 진출해 있는 인도네시아는 아세안 중에서도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전략적 요충지다. 금융 부문 성장이 기대되는 곳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이는 아직 금융 산업이 활성화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특히 인도네시아는 브라질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디지털 은행 계좌를 개설하고 있는 국가다. 국내 은행들이 철저한 현지화 전략 중 하나로 디지털금융에 포커스를 맞춘 배경이다.

▲지난달 26일 인도네시아 중앙 자카르타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큐리스(QRIS)로 물건을 결제하고 있다. 마스크를 쓴 30대 여성이 계산대 앞에 휴지를 3개 놓았다. “어떻게 결제할 것이냐”는 점원의 물음에 말없이 손에 든 핸드폰을 켰다. 여성이 핸드폰 속 애플리케이션(앱)을 누르고 점원이 보여준 QR코드를 찍었다. 이후 점원에게 초록색 체크 표시가 된 ‘결제 완료’ 화면을 보여준 후 물건을 가지고 나갔다. 그 뒤에 히잡을 쓴 40대 여성도 우유 2개, 방울토마토, 포도, 음료수를 같은 방식으로 구매했다. (유하영 기자 haha@)

실제 자카르타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는 대다수의 손님들이 장 본 물건을 핸드폰으로 결제했다. 이 곳에서 1년째 도넛, 피자 등 다양한 종류의 빵을 팔고 있는 샤프나(21)는 “손님의 80% 정도는 큐리스(QRIS)로 결제하고, 20%는 현금으로 결제한다”고 귀띔했다. 큐리스는 인도네시아의 QR코드 표준 결제 시스템으로, 핸드폰만 있으면 사용할 수 있는 충전식 간편 결제방식이다. 도입 후 4년이 지난 지금, 큐리스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일상에 스며들었다. 교통카드 발급부터 마트, 택시 결제, 길거리 음식 구매까지 큐리스로 한다.

고젝, 쇼피 등 e커머스 기업의 애플리케이션(앱)에서 고페이, 쇼피페이 같은 간편 결제 수단을 거치거나 사용 중인 은행의 모바일뱅킹 앱으로 가게가 제시하는 QR코드를 스캔하면 된다. 은행 계좌가 없어도 현지 대형마트에서 현금으로 충전해 쓸 수 있다.

샤프나가 일하는 가게에서 스무 걸음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크레페를 만드는 디야(21)도 손님 10명 중 9명은 큐리스를 사용해 결제한다고 밝혔다. 디야는 총 2개 은행 계좌를 갖고 있지만 영업점에 갈 일은 특별히 없다. 핸드폰만 있으면 소비를 하는 데 어려움이 없어서다. 최근 언제 영업점을 방문했냐는 질문에 한참을 망설이더니 “기억이 안 난다”고 답했다.

금감원 ‘2023 인도네시아 감독편람’에 따르면 인도네시아는 전체 인구의 25%에 달하는 약 4770만명이 디지털 은행 계좌를 보유하고 있다. 코트라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인도네시아 인구의 67%가 스마트폰을 사용한다. 인도네시아에서도 ‘모바일 뱅킹’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자카르타에서 찾은 현지·한국계 은행 영업점 직원들도 과거에 비해 점포를 찾는 고객이 줄었다고 입을 모았다. 자산규모 1위인 만디리 은행에서 10년째 근무 중인 아티카 야스민은 “요즘에는 개인고객을 위한 모바일 앱으로 업무를 보는 고객이 많아 영업점을 찾는 고객 수가 확연히 줄었다”며 “앱 사용이 불편하거나 컴플레인이 있는 경우, 복잡한 상품에 대한 상담을 받고자 하는 경우에만 영업점을 찾는다”고 말했다.

한 한국계 은행 영업점의 시큐리티 가드는 “하루에 지점에 오는 고객 중 현지인과 한국인의 비중이 7대 3 정도인데, 특히 현지인 고객 중 모바일뱅킹을 쓰고 직접 지점을 찾지 않는 이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는 전체 국민의 52% 정도만 은행 계좌를 갖고 있고, 주식 계좌 보유 비중은 4.2%에 불과하다. 신용카드 사용률은 약 2%에 그친다. 신용평가시스템이 미흡해 금융사들이 신용카드를 잘 발급해 주지 않아 생긴 현상이다. 1400원짜리 과자, 3500원짜리 커피, 10만 원이 넘는 숙박비 모두 금액에 상관없이 매번 카드 단말기에 서명하거나 개인인증번호(PIN)를 입력해 본인확인을 해야 하는 것 역시 아직 신용평가체계가 안정화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달 25일 찾은 한 마트에서 직원이 BNI 카드 단말기로 과자를 결제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신한카드 쏠(SOL)트래블 체크와 트래블월렛 카드를 번갈아가며 사용했는데, 두 카드 모두 모든 은행의 단말기에서 오류 없이 결제가 잘 됐다. 가게마다 서로 다른 은행의 카드 단말기를 구비해 놓고 있었다. 현금을 받지 않는다는 한 가게는 BCA, 쇼피페이, 고페이 등 세 종류의 카드 단말기를 준비해 놓았다. 결제를 할 때면 금액에 상관없이 매번 서명을 하거나 PIN번호를 입력해야 했다. (유하영 기자 haha@)

이런 인도네시아의 금융시장에도 변화의 바람은 불고 있다. 변화는 코로나19 이후, 20~30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시작됐다. 아티카 야스민은 “코로나19 이후에 젊은 세대 사이에서 주식 등 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며 “더 이상 은행 계좌에만 돈을 넣지 않고, 핀테크사 상품, 뮤추얼 펀드, 주식, 채권 등에 돈을 넣는 것이 최근 트렌드”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흐름은 앞으로 인도네시아에서 ‘주류’가 될 가능성이 크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은 약 2억7000만여 명의 인구 중 생산가능연령 인구가 70%에 달하고, 소비 연령층인 MZ 세대가 54% 수준으로 젊은 인구의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지난달 24일 오전 11시께 찾은 BNI의 한 지점 모습. 내점한 여성 고객 세 명은 모두 20~30대 젊은 청년층이었다. (유하영 기자 haha@)

한편, ‘사바사(사람 바이 사람)’의 공식은 인도네시아에서도 여지없이 통했다. 자카르타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눈 시민 6명은 모두 계좌를 갖고 있었다. 자카르타 시민의 평균 지출액이 전국 1인당 지출액을 상회하는 등 소득수준이 비교적 높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서부자바주에 살고 있는 퍼먼 하디(35)와 니스완(41)은 회사 거래 은행인 BNI 계좌 한 개만 가지고 있었고 “일상생활을 하는 데 부족하지 않다”고 했다. 서부자바주 반둥에서 살다가 가족들과 자카르타로 온 지 20년이 넘었다는 나나 달티나(46)는 BNI에 더해 BRI 계좌를 하나 더 갖고 있었다. BRI와 BNI는 각각 자산규모 상위 2위, 4위인 현지 대형은행이다.

BNI, BRI, CIMB. 자카르타에서만 35년 넘게 살았다는 해니(40)가 쓰는 계좌들이었다. 그는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주변 아시아 국가로 출장을 많이 나가는 업무 특성상 계좌를 3개나 가지고 있었다. 급여를 넣는 계좌 하나, 가족 간 이체 등에 쓰는 계좌 하나, 출장 가서 쓸 계좌 하나. 그는 "평소 생활에 필요한 물건만 사는 편이고 투자에도 큰 관심이 없어 계좌가 세 개면 충분하다"며 "소비패턴이나 직업, 사는 곳에 따라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계좌 수 등이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중앙 자카르타의 한 대로변 모습. 버스 정류장과 지하철 역 근처 길가에 일렬로 정차한 오토바이 택시 기사들이 핸드폰으로 휴식을 취하거나 고객을 찾고 있다. (유하영 기자 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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