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상법 교수들도 반대하는 ‘이사 충실의무 확대’

입력 2024-09-25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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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법 전공 교수 10명 중 6명이 이사 충실의무 대상을 확대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에 부정적이라고 한다. 한국경제인협회가 25일 발표한 전국 법학전문대학원 및 대학교 법학과 교수 131명 대상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99명 중 62.6%가 상법 개정에 반대했다.

상법 개정은 입법부에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주도한다.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는 상법 조항의 ‘회사’를 ‘회사와 주주의 이익’(강훈식 의원안), ‘회사와 총주주’(박주민 의원안), ‘주주의 비례적 이익과 회사’(정준호 의원안) 등으로 수정하자는 움직임이다. 행정부도 장단을 맞춘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대표적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5월 경제이슈점검회의에서 투자자 이익을 보호할 수 있는 기업지배구조 개선 방안을 마련하도록 지시한 뒤 기회 날 때마다 법제화 필요성을 웅변하고 있다. 모든 길은 상법 개정으로 통한다고 보는 모양이다.

주류 학계 시선은 엄연히 다르다. 교수들은 상법 개정의 부작용과 역기능을 우려한다. ‘이사에 대한 소송 증가로 투자 등 정상적 경영 활동 위축’(49.2%), ‘행동주의 펀드 등 투기 자본의 경영 간섭 증가’(33.9%), ‘채권자 및 근로자 이익 침해’(9.2%), ‘기업 자금조달 위축’(7.7%) 등 우려의 근거도 다양하다. 어느 하나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다.

재계와 경제단체는 걱정이 태산이다. 정부와 정치권의 과도한 개입으로 기업 경영에 돌이킬 수 없는 초대형 혼란이 초래될까 봐서다. 정치권이 충실의무 대상을 손보면 기업 가치를 높이기는커녕 악재가 될 공산이 크다고 보는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상장사 153개를 조사한 결과 상법 개정 시 인수합병(M&A) 계획을 재검토하거나(44.4%) 철회·취소(8.5%)하겠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어서기도 했다.

주주는 장기투자자, 단기투자자, 행동주의 펀드 등 입장에 따라 이해관계가 천차만별이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모든 주주 이익을 동시에 충족하는 것은 불가능한 과제다. 할 수 없는 일을 하라고 강요하면 실익은 없이 비용만 늘어나는 법이다. 기업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경영상 중대 결정조차 지체된다. 소송 남발로 경영 위축은 불 보듯 뻔하다. 주요국들이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 한정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 영국, 일본, 독일, 캐나다 등이 다 그렇다.

주주를 위한다며, 혹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극복한다며 기업을 옥죄는 것은 블랙코미디다. 주주 권익 극대화를 원한다면 기업이 뛰고 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급선무 아닌가. 왜 다른 선진국에 다 있는 경영권 보호 장치를 도입하는 발상은 없는지 신기할 지경이다. 우리 기업 현장에선 포이즌필, 차등의결권 같은 경영권 방어 수단조차 찾아보기 힘들지 않나. 글로벌 행동주의 펀드가 목표로 삼은 한국 기업 수는 2019년 8곳에서 지난해 77곳으로 9.6배가량 증가했다고 한다. 이런 답답한 현실이 보이지도 않는지, 정부와 정치권에 묻게 된다. 국내외 현실을 직시할 혜안이 없다면 상법 전공 교수들의 식견에라도 의지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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