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정치권 개입에 국론 분열 악순환돼
국민의식 왜곡 말고 학계에 맡겨야
과거에 ‘국가론’이란 과목이 여러 대학에서 개설되었다. 그러나 ‘국가론’의 수업 내용은 담당 교수마다 크게 달랐다. 국가가 성장하며 그 속에서 민족, 정부, 시장, 시민사회가 상호 작용하는 구조를 거시적으로 다룬 교수도 있었다. 국가 내의 여러 행위자가 전략적 선택을 하며 국가 기능이 수행되는 과정을 미시적으로 다룬 교수도 있었다. 국가가 세계 무대에서 여타 국가들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위상을 세워가는 체제를 다룬 교수도 있었다. 이 과목이 제각각일 수밖에 없던 건 국가라는 개념이 복잡하고 다층적이기 때문이다. 국가를 어떤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크게 다른 내용을 다룰 수 있다. 이런 모호함으로 인한 혼란을 막고자 요즘은 ‘국가론’ 대신 더 구체적인 이름의 과목들이 개설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정치권에서는 국가라는 어려운 개념을 놓고 너무 단순한 흑백 논쟁을 벌이고 있다. 건국일이 언제고, 건국의 주역이 누구냐를 두고 여야 간, 진보·보수 간 논쟁이 살벌하다. 국가를 어떤 측면, 어떤 관점으로 볼지에 따라 답이 달라지는 사안을 놓고 서로 자기 의견만이 정답이며 상대방은 친일 혹은 친북이라 다른 답을 낸다고 매도한다. 경직된 이념의 틀에 갇힌 정치권 인사들의 유치한 모습이다. 정치인 출신 광복회장마저 특정 입장의 인사를 독립기념관장으로 임명해선 안 된다고 외치며 흑백 정쟁의 판을 키웠다.
우리말 ‘국가’의 영어 단어는 country, nation, state, nation-state 등 여럿이다. country는 종합적 공간, 물리적 환경의 뉘앙스를 띤다. nation은 역사, 전통,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단을 의미한다. state는 공적 권력을 행사하는 기관이나 체제를 뜻한다. nation-state는 국제적으로 정통성을 인정받는 독자적 주권 국가이다. 이 중 어느 것이냐에 따라 ‘우리나라’의 건국을 1919년으로 볼 수도, 1948년으로 볼 수도 있다. 혹은 1945년으로도, 아니면 수백 년 전, 나아가 수천 년 전으로 볼 수도 있다. 심지어 건국을 아직 미완성의 과정이라고 보기도 한다. 어떤 의미의 국가냐에 따라 건국의 주체도 달라진다. 국가라는 추상적인 우리말의 복잡한 의미가 혼란을 낳고 오해를 일으키는 것이다.
국가의 구성요소를 고려해도 건국의 시점이나 주체를 단순하게 논할 수 없다. 학계에서 통상 제시하는 국가의 기본적 구성요소는 8개에 달한다. 합법적 강제력, 영토, 주권, 정체성, 법, 정부·시장·시민사회 3자 체제, 관료조직, 사람(국민)이 그것이다. 중요한 건, 이들이 다 이상형(ideal-type)으로서 어떤 국가도 8개를 다 완벽히 갖추지 못한다는 점이다. 구성요소가 부분적으로 미흡하거나 부재해도 전체를 보며 이 정도면 국가로 보자고 합의할 뿐이다. 합의가 되지 않는 경우도 나온다. 식민지로 전락한 곳이나 해외 임시정부의 경우, 8개 구성요소 중 전혀 충족되지 못한 게 있지만 전체 요소들을 두루 보며 사례별로 국가로서의 존재 여부를 조심스레 판단한다. 이러니 건국의 시점과 주체에 대한 명료한 결론은 불가능하다.
학계에서는 계속 이 사안을 놓고 연구해야 한다. 국가가 어떤 의미일 때, 또한 어떤 구성요소들이 어떻게 결합할 때 어떤 결론을 낼 수 있는지 정교한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 그러나 정치권의 일은 아니다. 정치권은 국민의 생명, 권리, 이익과 사회적 가치를 위한 현실적 현안에 매달려야 한다. 이념의 집단주의적 논리에 휘둘리기 쉬운 정치권이 관여하는 순간, 건국의 시점과 주체에 관한 정교하고 다층적인 논의는 일차원적인 흑백 정쟁으로 전락한다. 이 불필요한 정쟁은 정치권의 대결 구도를 악순환으로 더욱 경화시킨다. 그뿐 아니라 국민의 인식마저 왜곡시켜 편협한 국수주의를 퍼뜨리고, 국민을 일방적이고 과도한 반일, 반미, 반공·반북, 반중의 늪으로 밀어 넣는다. 정치권은 제발 낄 때와 빠질 때를 알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