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벌써부터 걱정되는 내년 광복절

입력 2024-09-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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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선 사회경제부장
19세기말 외세의 바람 앞에 동북아 3국이 처한 상황은 비슷했다. 이즈음 서양 문물에 맞선 한중일 3국의 태도는 동도서기, 중체서용, 화혼양재로 요약된다. 세 나라는 각각 조선[東]의 전통적인 정신[道]을 유지하면서 서양[西]의 기술[器]을 받아들이자고 했고, 중국[中]의 사상과 정신을 몸[體]으로 삼아 서양[西]의 과학기술을 유용하게 사용[用]하자고 했으며, 일본[和]의 정신[魂]을 지키며 서양[洋]의 기술[才]을 받아들이자고 했다. 닮은 듯 다른 근대화 접근법은 문화인지적 측면에서 3국의 차이를 설명하는 데 종종 차용된다.

하지만 역사인식 차원에서는 전혀 다른 얘기가 된다. 전쟁으로 국가의 위력을 발현하려는 군국주의 망령에 사로잡혀 주변국을 침략·약탈했던 일제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렇기에 지난 광복절 전후로 김형석 신임 독립기념관장으로부터 시작된 왜곡된 역사인식 논란에 어안이 벙벙하다. ‘일제강점기 (우리 선조들의) 국적은 일본’이라는 인식은 일제의 불법적 약탈 자체를 인정하는 궤변이다. 또 빼앗긴 조국을 되찾은 민족적 자긍심을 짓밟는 행위이자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우리 헌법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다. 대꾸의 가치도 없고 논쟁 거리도 안 된다.

그간 우리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한일강제병합 조약은 원천 무효”라는 것이다. 외교부도 최근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국권 침탈은 불법·무효’임을 다시 한번 명확히 했다. 외교부는 1965년 7월 5일 정부가 발간한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조약 및 협정 해설’를 재확인하며 “소위 한일합병조약과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협정, 의정서 등 명칭 여하를 불문하고 국가 간의 합의 문서는 모두 무효”라고 밝혔다.

독립기념관이 어떤 곳인가. 독립운동의 역사를 온전히 보존하고 후손들에게 올바르게 물려주자는 취지에서 국민 성금으로 지어진 우리 민족의 혼이 담긴 역사관이다. 역사관에 ‘경영전략’이라는 표현이 마뜩잖기는 하지만, 독립기념관은 ‘중장기 경영전략’에 ‘국난 극복·자주 독립의 우리 민족 역사를 보존·계승하여 국민의 올바른 국가관 정립을 통해 국가발전에 기여’함을 미션으로 삼고 있다. 또 비전으로 ‘독립정신을 지키고 널리 알려 국민통합에 기여하는 독립기념관’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미션과 비전에 비춰볼 때 김 관장이 자주독립의 우리 민족 역사를 보존·계승할지, 국민의 올바른 국가관 정립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아직도 진행형인 논란을 감안하면 그는 국민통합이 아닌 국론분열의 단초를 제공한 때문이다. 더구나 그는 조직의 수장으로서 지켜야 할 독립기념관의 광복절 경축식을 취소한 데 이어 1987년 기념관 개관 이후 관장이 독립기념관 경축식에 참석하지 않은 사례를 남겼다. 기관의 비전과 미션에도 어울리지 않는 부적절한 인사는 결자해지 측면에서 바로잡아야 한다.

그런데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지난달 29일 이종찬 광복회장을 만나 ‘경기도립 독립기념관’을 별도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은 나가도 너무 많이 나간 측면이 없지 않다. 마침 경술국치일이어서 과한 발언으로 이해하지만 같은 기능의 역사관을 별도를 짓자는 것은 독립기념관 자체를 둘로 나누자는 발상이나 다름없어서다. 독립투사와 순국선열들을 기리는 역사관마저 둘로 갈라 분열시켜서야 될 일인가. 어긋난 역사인식에 비판치고는 빗나간 맞장구인 셈이다.

상황이 이쯤 되니 내년 광복절이 벌써 걱정이다. 내년 광복절은 80주년으로 정주년인 만큼 더 의미 있게 기념해야 할 터인데 작금의 상황을 보자면 두 동강 난 광복절이 재현될 공산이 크다. 이런 국론분열을 지켜보면서 속으로 웃고 있을 일본을 생각하면 착잡하다.

김동선 사회경제부장 matth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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