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 인간 진화 밝혀줄 오랑우탄

입력 2024-08-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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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난영 과학칼럼니스트

8월 19일은 ‘세계 오랑우탄의 날’이었다. 몇몇 친구들에게 이런 기념일이 있다고 했더니 예외없이 모두가 “그런 날도 있어?” 하고 놀란다. ‘오랑우탄이 기념일까지 만들 정도로 중요한 동물이야?’라는 의구심이 담긴 반응이다.

말레이어로 오랑(Orang)은 사람을, 후탄(Hutan)은 숲을 지칭한다. 그래서 오랑우탄을 흔히 ‘숲의 사람’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들은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열대 우림 속 나무 위에서 주로 생활한다. 일반적으로 30m 높이의 나무 꼭대기에서 혼자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거대 유인원은 극도로 진지하고 매우 조용한, 요즘말로 극 I의 성향을 갖고 있다. 움직임 또한 매우 느리고 신중한 데다 몇몇은 너무 조용해 지루하기까지 하다. 이런 탓인지 1960년대 후반에서야 오랑우탄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생겨난다.

침팬지·고릴라보다 인간에 더 가까워

오랫동안 관심 밖에 머물렀던 탓인지 이 거대 유인원에 대해 잘못 알려진 정보가 심심치 않게 많다. 오랑우탄의 날은 급격한 개체 수 감소에 따른 보호 차원에서 제정됐다. 그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는 뒤에 지면을 보아 논하기로 하고, 이름이 걸린 날인 만큼 이 야생 동물의 특이한 모습을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자.

오랫동안 오랑우탄은 다른 유인원 즉 침팬지나 고릴라에 비해 지능이 낮은 동물로 여겨졌다.

하지만 원숭이를 포함한 모든 영장류 가운데 오랑우탄이 첫 번째, 침팬지가 두 번째로 지능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을 정도로 매우 똑똑한 동물이다. 야생의 오랑우탄이 얼마나 높은 지능을 가졌는지는 그들의 도구 사용 능력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사실 1980년대 초 동물원에서 오랑우탄이 도구를 만들어 내는 모습이 관찰됐을 때만 해도, 이는 단지 인간의 행위를 흉내내는 것에 불과하다고 폄하됐었다.

하지만 이후 발표된 여러 연구 보고서 등을 통해 다른 어떤 유인원 못지않게 야생의 오랑우탄도 도구를 사용해 문제를 해결하고 도구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일례로 막대기를 이용해 나무 구멍 안 꿀을 꺼내 먹고, 나뭇잎 뭉치를 일종의 스펀지처럼 사용하여 물을 얻기도 한다.

또한 나뭇가지를 모기 퇴치 수단으로 활용하고, 가시가 많은 과일을 옮길 때 나뭇잎으로 손을 보호하며, 큰 나뭇잎으로 우산을 만들기도 한다. 사람이 면봉으로 귀를 청소하듯이 나무 줄기로 귀를 파는 모습이 관찰된 적도 있다.

또 하나의 오해는 인간과의 신체적 유사성이다. 사실 얼핏 보면 직립 보행을 하는 침팬지나 고릴라와 비교해 오랑우탄과 인간 사이의 접점은 매우 빈약해 보인다. 오랑우탄은 몸 전체가 길고 붉은 색 털에 뒤덮여 있고, 팔 길이도 서 있을 때 발목까지 닿을 정도로 길다. 무엇보다 주 생활 공간이 나무 위고, 먹이 채집을 할 때도 나무 줄기를 타고 한 나무에서 다른 나무로 이동한다. 때문에 손이나 발 모두 무엇인가를 강하게 움켜쥔 듯한 모양을 띠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과 오랑우탄의 DNA는 약 96% 일치한다. 이는 침팬지의 99%보다는 약간 낮은 수치지만, 인간과 이 거대 유인원 사이에 꽤나 큰 공통점이 있음을 암시한다.

실제로 미국의 한 연구 팀에서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신체적 특성으로 볼 때 가장 인간에 가까운 게 오랑우탄이다. 이들은 우선 영장류에 나타나는 수백 가지 신체적 특징을 수집한 후 이 중 사람과 유인원에만 나타나는 특징 63가지를 추려냈다. 그 결과 사람과 오랑우탄은 28가지 특징을 공유하는 데 반해 침팬지와 사람이 함께 가지고 있는 특징은 2가지에 불과하고 고릴라는 이보다 조금 더 많은 7가지 특징을 공유하는 걸로 판명됐다. 이름에 ‘우탄’이 괜히 붙은 게 아니다.

오랑우탄의 자가치료 역시 흥미로운 사실 중 하나다. 일례로 영국 엑시터 대학을 중심으로 한 국제공동 연구팀이 보르네오 오랑우탄을 관찰하던 중, ‘드라세나 칸틀레이’라는 식물을 씹어서 즙을 낸 뒤에 피부에 바르는 광경을 목격했다. 이는 사포닌 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인근 주민들이 관절염이나 근육통 치료에 자주 활용하던 식물이다. 그런데 암컷 오랑우탄들이 새끼를 안고 다니다 팔이 아프면 이 식물을 씹어 팔에 바르는 모습이 포착된 거다.

자가 치료가 오랑우탄에서만 발견되는 현상은 아니다. 영장류 중에는 체외 기생충이나 피부 감염 방지를 위해 식물의 진액을 바르는 동물들이 꽤 있다. 그런데 이건 단순한(?) 자가치료 중 한 예를 넘어, 오랑우탄이 인간에게서 배울 수도 있다는 걸 의미한다. 즉, 오랑우탄은 인간의 행위를 보고 따라할 수 있는 모방 능력도 갖고 있다.

유인원 통해 인간의 진화과정 추적

이들 이외에도 오랑우탄의 행동에는 흥미로운 점이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오랑우탄은 무화과를 포함해 과일을 좋아한다. 그런데 이들의 서식지인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열대 우림에는 지구상 그 어느 곳보다 다양한 종이 존재한다.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무화과만 해도 73종 이상이 있는 걸로 알려져 있다.

이런 곳에서 오랑우탄은 잘 익은 무화과를 언제 어디서나 발견할 수 있을지 어떻게 아는 걸까? 그리고 식물마다 먹이로 섭취하는 부분도 다른데 식물의 어느 부분이 특히 영양가가 높고 어느 부분이 유독한지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인간과 오랑우탄의 유사성에 비춰볼 때 유인원의 생태학적 발전 과정은 인간의 진화 과정을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오랑우탄이 흥미로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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