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전증 치료제 시장은 커지는데, 치료제 옵션은 ‘제한적’

입력 2024-07-23 05:00수정 2024-07-23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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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값 못 받아 한국 출시 기피…“국내 환자, 신약 혜택 가장 늦어”

▲SK바이오팜이 자체 개발해 2020년 미국에 출시한 뇌전증 신약 ‘엑스코프리’ (사진제공=SK바이오팜)

뇌전증 치료 기술이 꾸준히 발전해 왔지만, 국내 치료 환경은 이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신약 도입 절차와 치료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22일 의료계에 따르면 국내 뇌전증 환자들은 적합한 치료를 받기 위해 전국을 떠돌고 있다. 뇌전증 환자 진료가 가능한 의사와 시설을 보유한 병원이 희귀해서다.

국내에서 뇌전증 수술을 시행할 수 있는 병원은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고려대구로병원, 해운대백병원 등 6곳에 불과하고 수술을 할 수 있는 전문의는 7명뿐이다.

또한 뇌전증 치료에 뛰어난 효과가 입증된 약물도 다수 등장했지만, 국내 환자들 대다수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신약이 국내에는 도입되지 않았거나, 국내에서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은 이후에도 출시가 좌초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SK바이오팜이 개발한 뇌전증 치료 신약 ‘세노바메이트’의 경우 국내 도입 시기가 미지수다. 미국에서는 이미 2020년 SK바이오팜의 미국 자회사 SK라이프사이언스를 통해 ‘엑스코프리’라는 상표를 달고 출시했다. 이듬해인 2021년에는 독일을 시작으로 상표명 ‘온투즈리’로 유럽 시장에도 진출했다.

국내에서는 동아에스티가 판권을 넘겨받아 2026년 출시를 목표로 식약처 허가를 준비 중이다. 결국 한국 기업이 개발한 뇌전증 치료 신약의 혜택을 정작 한국 환자들은 가장 늦게 받는 셈이다. 의료계에서는 SK바이오팜이 한국을 패싱했다며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인 UCB가 개발한 뇌전증 항경련제 ‘브리바라세탐’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인 상황이다. 국내에선 6년 전인 2019년 3월 식약처 허가를 받고았음에도 출시되지 못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기업이 건강보험 약가 협상에 실패하면서 국내 의료현장에 도입이 좌초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3세대 치료제인 브리바라세탐은 우울증과 불안 등 기존 1세대와 2세대 항경련제의 한계로 꼽히는 부작용을 대폭 줄였다. 또한 기존 항경련제처럼 환자 개인에게 맞는 용량을 찾기 위한 시행착오 없이 바로 정해진 용량을 투약하면 된다. 이 때문에 허가 당시 국내에서는 뇌전증 환자 삶의 질을 크게 개선할 수 있는 약물로 주목을 받았지만, 현재는 한국 시장 철수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의료용 대마 역시 환자들의 접근이 제한적인 것은 마찬가지다. 대마 성분의 희귀의약품 ‘에피디올렉스’가 2021년부터 레녹스-게스토 증후군과 드라베 증후군 등을 앓는 소아 뇌전증 환자를 대상으로 건강보험 급여를 적용해 공급되기 시작했다.

다만 성인 뇌전증 환자들은 급여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경제적 부담으로 투약을 시도하기 어렵다. 에피디올렉스 1병의 가격은 약 168만 원으로, 비급여 투약 시 환자는 연간 약 4000만 원의 약값을 감당해야 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집계한 국내 뇌전증 환자 수는 2019년 14만7808명에서 꾸준히 증가해 2023년 15만5859명으로 파악됐다. 대한뇌전증센터학회 조사 결과 뇌전증 환자의 돌연사율은 건강한 사람의 17배, 수술이 필요한 중증난치성뇌전증 환자는 30배 높다.

신약 도입과 치료 인프라 강화를 위한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특히 한국 정부가 신약의 가격을 지나치게 낮게 책정할 경우, 해외 기업은 물론 한국 기업들조차 신약의 한국 출시를 기피하게 된다는 우려다.

홍승봉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뇌전증지원센터장)는 “각국 정부는 기업과 약가 협상을 진행하면서 타국에서 출시한 가격을 참조하기 때문에 한 국가에서 낮은 가격에 신약을 출시하면, 그다음부터는 높은 가격으로 협상을 타결하기 불리해진다”라며 “지금처럼 신약 출시가 어려운 환경이 바뀌지 않는다면 국내 뇌전증 환자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미국으로 원정 치료에 나서는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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