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로] ‘자원개발 흑역사’ 반복돼선 안된다

입력 2024-06-26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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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따라 정책표류…냉온탕 반복
공공·민간역할 나눠 일관추진하고
정치적 공방으로 허송세월 말아야

6월 초 동해 대형가스전 부존 가능성 발표에 온 나라가 술렁이고 있다. 대통령 발표대로 이곳에 대량의 석유·가스가 발견돼 우리가 다시 산유국이 되기를 바라면서도, 국면전환용이라는 일부 비판처럼 정치 이슈화돼 자칫 과거의 ‘자원개발 흑역사’가 재연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우리나라 자원개발은 1968년 인도네시아 삼림자원 개발이 효시로서, 경험이 쌓이면서 석유·가스전 및 광물자원에서도 성공사례가 나오게 되었다.

그러다 1997년 말 외환위기가 터지자 기업들이 보유했던 해외유망광구 26개를 헐값에 매각하는 실수를 범했다. 기업들이 유동성 확보가 절박했던 상황에서 국제가격 하락으로 수익성이 떨어지자 유망광구를 매각해버린 것이다. 그런데 불과 수년 후 국제가격이 크게 회복됐을 때 과거 헐값 매각했던 걸 후회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좀 더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눈앞의 상황에만 연연한 데 따른 뼈아픈 실수였다.

이 실수의 부작용은 MB정부의 ‘묻지마식’ 해외자원개발 투자로 이어졌다. 당시 정부는 양적인 ‘자주개발률’ 목표를 설정하고, 160개가 넘는 해외자원개발 사업을 지원했다. 그러나 치밀하지 못한 프로젝트 선정으로 훗날 16조 원이 넘는 손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캐나다 하베스트 및 혼리버?웨스트컷뱅크, 이라크 쿠르드, 호주 바이롱밸리 유연탄광, 멕시코 볼레오 동광 등 이때 실패한 프로젝트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런데 또 다른 잘못이 이후 정권에서 발생했다. MB정부의 정책실패 원인을 규명해 바로잡기보다는 해외자원개발 자체를 적폐로 몰아 관련 예산을 삭감해 버렸고, 또 다른 정부에선 자원개발 정책은 소홀한 채 에너지 전환의 타당성을 둘러싼 정치적 공방만 계속됐다. 이러는 사이 공기업은 재무상황 악화와 예산지원 축소로 자원개발 역량을 잃고, 민간기업은 국민인식 악화와 유가 하락으로 투자를 기피함으로써 국내 자원개발 산업생태계가 붕괴되었다. 자원개발의 흑역사가 되풀이된 것이다.

이 결과 자원안보 역량을 나타내는 지표인 석유·가스 개발률이 최근 10%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일본이 2004년 ‘석유가스금속 광물자원 기구’(JOGMEC)를 설치하고, 이를 중심으로 민간주도 자원개발을 일관성 있게 추진한 결과 석유·가스 개발률을 40%까지 높인 것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자원개발은 기업의 수익 차원을 넘어 경제안보, 국민생활 안정, 산업발전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석유·가스 및 금속광물의 수요는 계속 증가하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글로벌 자원공급망이 불안해져 자원안보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그래서 미국·EU·일본 등 주요국은 자체생산 확대와 공급망 안정화를 추진하고, 중국 등 자원부국들은 보유 자원을 무기화함으로써 자원을 둘러싼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지난 1월 ‘국가자원안보특별법’을 제정하고, 3월엔 ‘민관협력 해외자원개발 추진전략’을 마련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이 특별법에서 5년 단위 자원안보기본계획 수립과 컨트롤 타워인 자원안보협의회 구성·운영을 규정하고, 국가 자원개발전략 기본방향의 하나로 ‘정책일관성’을 설정한 것은 정권에 따라 정책이 표류한 과거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것이어서 나름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민간주도 개발을 촉진한다는데 특별융자와 세제지원만으로 민간투자를 유인할 수 있을지, 과거 외환위기 때처럼 향후 민간기업이 다시 보유광구를 매각할 경우에 대한 대책이 없는 점, 공기업 역할을 민간기업 지원과 전략비축 등으로 한정하고 능동적 자원개발 역할을 부여하지 않은 점은 아쉽다.

전문가들은 자원개발이 절대 정치 도구화돼선 안 되고, 자원안보와 국민생활 안정이라는 본질적 목적에 맞춰 일관되게 추진될 것과 공공·민간 부문이 역할을 분담하되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1998년 동해-1 가스전 개발 성공이 외환위기로 실의에 찬 국민들에게 큰 희망을 줬던 것을 기억한다. 이번 동해 심해가스전의 부존 가능성은 철저히 점검하되, 타당성이 인정되면 시추가 차질 없이 이뤄지게 힘을 모아야 한다. 모든 나라가 안정적인 자원공급망 확보에 혈안인 이 엄중한 시기에 또다시 정치적 공방으로 허송세월하는 흑역사를 반복해서는 결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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