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대남전단은 오물?…역대 삐라 살펴보니 [해시태그]

입력 2024-06-03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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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애 디자이너 mnbgn@)

‘오물 풍선’이 전국에 쏟아졌습니다. 지난달 28일부터 발견된 오물 풍선만 1000여 개에 이르는데요. 오물 풍선이 추락하며 시민들의 재물피해까지 이어지고 있죠.

3일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이 1일부터 남쪽으로 날리기 시작한 오물 풍선은 720개 정도인데요. 여기에 지난달 28~29일 날린 260개의 오물 풍선을 더하면 약 1000개의 오물풍선이 날아왔습니다. 북한은 오물 풍선에 이어 서북도서지역 항공기 선박을 대상으로 GPS 교란 공격도 감행했죠.

북한의 오물 풍선 투척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데요. 2016~2017년에도 북한은 오물 풍선을 날렸죠.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1000개의 풍선은 연간 살포량 수준이라는 점인데요. 1년간 살포했던 물량을 일주일 만에 날린 셈입니다.

우리 군은 북한이 오물 풍선을 살포한 뒤 화생방신속대응팀(CRRT)과 폭발물 처리반(EOD)이 출동시켜 수거했는데요. 현재까지 수거한 오물 풍선에는 담배꽁초, 폐지, 천 조각, 비닐이 발견됐고, 화생방 오염물질 등 위험물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연합뉴스)

하지만 오물이 하늘에서 떨어진 만큼 피해는 속출했는데요. 2일 오전에는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한 빌라 주차장에 주차돼 있던 차량에 오물 풍선이 추락해 차 앞 유리가 산산조각이 났죠. 경기도 부천시에서도 오물 풍선이 트럭 앞바퀴에 떨어지면서 폭발해 타이어와 차량 운전석 외부가 불에 타 그을음이 생겼고요. 서울 양천구에서도 차량에 쏟아져 조수석 유리가 깨지기도 했습니다.

오물 풍선은 인천공항에도 등장했는데요. 1일과 2일에 각각 오물 풍선 한 개씩이 공항 내부로 떨어져 항공이 운항이 일시적으로 중단됐습니다. 이틀 동안 지연된 항공기는 총 51편에 달하죠.

이에 대통령실은 2일 “북한이 감내하기 힘든 모든 조치를, 즉각 취할 것”이라며 2018년 이후 중단했던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시사했는데요. 그러자 북한은 오물 풍선 살포 행동을 잠정 중단할 것이라고 알려왔죠. 그러면서 “다만 한국 것들이 반공화국 삐라(전단) 살포를 재개하는 경우 발견되는 양과 건수에 따라 우리는 이미 경고한 대로 백배의 휴지와 오물량을 다시 집중 살포하는 것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는데요. 한국에서 보내온 ‘대북 전단(삐라)’과 확성기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 상황이죠.

(뉴시스)

2020년 문재인 정부에서 군사분계선 이남과 이북 사이의 접경지역에서의 대북전단 및 기타 물품의 살포 행위를 금지하는 ‘대북전단 금지법’을 시행했는데요. 이후 지난해 9월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림에 따라 효력을 잃은 상황입니다.

위헌 결정 이후 탈북민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는 계속됐는데요. 지난달 10일 탈북민 단체는 인천 강화도에서 김정은의 폭언을 규탄하는 대북 전단 30만 장, K팝, 트로트 동영상 등을 저장한 USB 2000개를 20개의 애드벌룬으로 날려 보냈습니다. 분노한 북한은 지난달 26일 대북 전단 살포에 맞대응을 예고했고, 이를 오물 풍선으로 받은 거죠.

오물 풍선에는 지난 대남 전단과 달리 유의미한 전단은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정부를 비난하고 발전상을 소개했던 역사 속 대북 전단은 이제 북한으로서는 ‘약점’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기도 했죠.

대북 전단, 일명 삐라는 전단, 고지서 등을 뜻하는 영어 ‘Bill(빌)’ 혹은 일본어 비속어인 ‘ビラ(비라)’에서 유래된 말인데요.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이후 유엔군과 북한군이 심리적 목적으로 사용되며 시작됐죠.

▲한국의 대북 전단 (출처=DMZ 박물관 홈페이지 캡처)

▲북한의 대남 전단 (출처=DMZ 박물관 홈페이지 캡처)

1960~1970년대 삐라에는 한국·유엔군이 북한 동포에게 보내는 메시지, 월남 방법, 남파공작원의 자수 등을 담은 사진을 포함했고요. 북한은 유엔군을 대상으로 외국 가족들이 기다린다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전쟁 기간이었기 때문에 전의 상실을 유도하고, 향수를 자극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죠. 상대방 내부를 이간시키려는 주제도 자주 등장했습니다.

1980~1990년대는 조금 화려해졌는데요. 한국에선 수영복을 입은 여성들을 전면에 내세운 ‘미인계’ 삐라와 함께 뛰어서 5분, 기다리는 마음, 보고 싶은 마음 등 월남을 권유하는 내용으로 만들었죠. 북한에서는 남한 연예인의 사진을 도용하거나, 양키는 살인마·흡협귀라는 문구와 무서운 이미지를 삽입하고, 북한 원수를 치켜세우기도 했습니다. 이때부터 한국은 아시안게임, 올림픽 등과 같은 이미지로 발전상을 홍보했는데요. 체제경쟁에서 밀린 북한은 삐라 살포에 한발 물러섰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 한국은 삐라 살포가 정부 주도가 아닌 민간 주도로 옮겨왔는데요. 종이 삐라가 아닌 북한 정권을 비판하는 영상, K드라마와 K팝 영상 등이 담긴 USB와 달러를 담은 비닐을 날려 보냈죠. 북한은 핵 강국을 홍보하며 한국 상황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물론 최근에는 ‘오물 풍선’ 대남 전단이 더 쟁점이 됐는데요.

(연합뉴스)

이 북한의 오물 풍선으로 피해를 본 시민들의 피해 보상을 놓고 논란이 있는데요. 경찰 관계자는 연합뉴스에 “현재로써는 오물 풍선으로 인한 마땅한 피해 보상 규정은 없다”며 “승용차 차주가 가입한 보험회사 측도 보상이 가능한 상황인지 내부 검토 중인 것으로 안다”고 밝혔죠. 1월에도 고양시의 차량 지붕이 부서지는 피해가 발생했지만. 보상을 놓고 지방자치단체와 보험회사 등이 혼선을 빚기도 했습니다.

21세기에 벌어진 오물 풍선. 참으로 아날로그적인 ‘분노 유발’이 아닐 수 없는데요. 삐라 시작부터 무려 70여 년이 지난 요즘에도 이를 마주한다는 사실이 헛웃음을 유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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