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부모가 오히려 탄원서를…다양한 ‘합의’의 풍경 [서초동MSG]

입력 2024-04-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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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 전국 법원에서 다루는 소송사건은 600만 건이 넘습니다. 기상천외하고 경악할 사건부터 때론 안타깝고 감동적인 사연까지. '서초동MSG'에서는 소소하면서도 말랑한, 그러면서도 다소 충격적이고 황당한 사건의 뒷이야기를 이보라 변호사(정오의 법률사무소)의 자문을 받아 전해드립니다.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에게 예상보다 낮은 형량이 선고되면 여기저기서 비판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이게 나라냐’ ‘판사 가족이 당해도 그렇게 판결하겠냐’ 등 기사 댓글로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들도 많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형사재판에서 형을 정함에 있어서 국민의 건전한 상식을 반영하고, 공정하고 객관적인 양형을 실현하기 위해 양형기준을 설정한다. 형종, 형량 등에 따라 일정한 기준이 있으나, 가해자와 피해자 간 ‘합의’는 감경 양형인자로 인정한다.

피고인이 자신의 범행에 대해 진심으로 뉘우치고, 피해자나 유족이 처벌불원의 법적‧사회적 의미를 정확히 인식해 피고인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 경우 감경 요소로 참작하는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 “피해자와 합의한 점” 등을 유리한 사정으로 판시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합의를 둘러싸고 많은 일이 발생한다. 심지어 합의 과정에서 다급한 피의자·피고인들에 의한 2차 가해나 갈등이 일어나기도 한다.

매번 심각하게 다투는 연인이 있었다. 여성은 남자친구의 나체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프로필로 설정했고, 남성은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와 집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허위 내용으로 경찰에 신고하기도 했다. 이들은 서로 경찰에 수차례 신고한 것을 넘어 기소돼 재판에 넘어갔다.

심지어 처벌불원서를 제출한 뒤 집에 돌아가는 길에 다시 싸워 별건으로 고소하는 일도 여러 번이었다. ‘다른 이성과 연락하지 않기’ ‘SNS 계정 삭제’ 등 서면화하기 어려운 조건을 처벌불원서에 걸었는데, 이를 어겼다며 처벌불원 의사를 번복하기도 했다.

▲ (게티이미지뱅크)

반면 합의가 감동을 자아낸 사례도 있다. 몇 년 전 지적장애를 가진 미성년자가 여학생을 추행한 일이 있었다. 조사를 마치고 피해자 국선변호인을 통해 여학생의 부모에게 자초지종을 전달했는데, 피해자의 부모가 되레 장애를 가진 부모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그 편지에는 ‘이런 일이 있었지만 부모의 어려움을 이해한다. 피해 학생의 예방과 함께 포용적인 시선을 갖게 됐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고령이었던 장애 학생의 부모는 오열했고, 사죄와 감사의 마음을 담은 답신을 보냈다.

이후 피해 학생의 부모는 합의금을 마다하고 자필로 탄원서를 써서 제출했고, 피해자 국선변호인의 설득과 제안으로 합의금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의 적은 돈을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장애인의 부모는 향후 자녀의 확실한 보살핌을 약속했다고 한다.

▲ (게티이미지뱅크)

이보라 변호사(정오의 법률사무소)는 “이 사건을 담당하면서 만일 내가 부모였다면 이렇게 행동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며 “생각보다 많은 사건에서 가해자는 범행을 인정하지 않거나 오히려 피해자를 비난하기까지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합의를 통한 긍정적인 효과를 언급했다. 이 변호사는 “가해자의 합의 의사는 범행에 대한 인정과 반성의 태도를 보여주고, 이를 금전으로나마 실천하겠다는 것”이라며 “감형에 대한 기대가 깔려있더라도 피해자로서는 빠른 해결을 통해 정서적 회복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합의를 근거로 한 감형은 인정되는 것이 낫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해자 대부분은 보복 가능성 등을 우려해 합의를 꺼리지만, 가해자들은 합의 절차를 거치면서 사건에 대한 감정도 대부분 정리한다”며 “합의 후 보복 행위는 드물어도, 합의를 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앙심을 품고 행패를 부리거나 보복하는 경우는 많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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