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출생신고 않고 사라진 부모…영민이는 유령이 됐다 [있지만 없는 무국적 유령아동①]

입력 2024-04-1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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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국적 친모, 유전자 일치에도 출생신고 완강 거부
"애 아빠는 외계인" "산부인과서 바뀌었다" 황당 주장
국적법상 외국인 부모땐 지자체서 직권 신고도 못해

▲출생신고가 되지 않아 내국인도 외국인도 아닌, '무적자', 서류상 존재하지 않는 무국적 유령아동이 국내에 50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아동보호소에 머물고 있는 영민(가명)이는 최근 홀로 외로운 두 번째 생일을 맞았다. 친부가 누구인지 모르고 친모는 중국으로 떠나 국내에 가족과 친척이 없다.

친모는 영민이의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영민이는 내국인도, 외국인도 아닌 ‘무적자’, 서류상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아이다. 16일 감사원 등에 따르면 영민이처럼 ‘있지만 없는’ 무국적 유령 아동은 국내에 50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영민이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지난해 친모 정모 씨의 첫째 딸이 학교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다. 아동학대를 의심한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이 지난해 초 경기도에 위치한 정 씨의 집을 방문했고, 그곳에서 생후 10개월인 영민이를 발견했다.

상태는 심각했다. 집은 담배꽁초와 강아지 배설물이 나뒹구는 불청결한 환경이었고, 공무원들이 분유를 타 먹이자 영민이는 허겁지겁 분유 한 병을 비웠다.

담당 공무원들의 조사 결과, 정 씨의 국적은 중국. 외국인이 우리나라에서 출생할 경우 영사관을 방문해 직접 출생신고를 해야 하지만 정 씨는 그러지 않았다. 당연히 영민이는 예방접종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공무원들은 정 씨에게 “아동학대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으나, 정 씨는 “내 자식이 아니다”라며 출생신고를 거부했다. 오히려 “산부인과에 입원했을 때 아이가 바뀌었다”, “나랑 같은 얼굴을 한 여자가 병원에서 아이를 바꿔치기 했다”, “아이 아빠는 외계인이다” 등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경찰은 아이들을 아동보호소로 보내 정 씨로부터 분리하고, 수원지검 성남지청은 정 씨를 기소했다. 첫째 딸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영민이의 출챙신고를 하지 않은 정 씨에게는 아동복지법위반(아동유기‧방임) 혐의가 적용됐다. 1심은 정 씨의 혐의를 모두 인정하고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항소심도 지난달 19일 검사의 항소를 기각했고 형은 확정됐다.

정 씨를 처벌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영민이의 출생신고였다. 그래서 검찰은 궁여지책으로 ‘치료감호’를 제시했다. 정신질환으로 법을 위반한 사람을 병원에 강제 입원시켜 치료하는 조치다. 피해망상과 판단능력 저하 상태인 정 씨가 치료를 받으면 출생신고를 하지 않겠냐는 계산이었다. 국내에 머물고 있는 정 씨의 친부도 판사에게 탄원서를 보내 “딸에게 치료가 필요하다. 둘째 자녀가 출생신고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정 씨의 상태가 치료감호시설에서 치료를 받을 정도로 심각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영민이의 친모는 정 씨’라고 인정했다. 수사기관의 유전자(DNA) 동일성 검사결과 두 사람의 유전자 일치율은 99.9999%로 나타났고, 정 씨가 영민이를 낳았다는 산부인과 출생증명서도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정 씨가 거부하는 상황에서 영민이의 출생신고를 할 방법은 없었다.

▲출생 미신고 아동보호를 위한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8월 서울 중구 서울시청 인근에서 열린 출생 미신고 아동 사망 예방과 출생 등록 권리 보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아동들의 권리를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서 있다. (뉴시스)

담당 검사들과 관계 기관 공무원들, 영민이의 변호인은 다른 방법을 고민했다. 영민이의 할아버지인 정 씨의 친부를 만나 “정 씨를 설득해달라”고 요청도 해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정 씨의 전 남편에게도 “영민이와 DNA 일치 검사를 해보자”는 제안도 했다.

여권은커녕 출생신고도 되지 않은 영민이를 중국으로 보내는 건 불가한 일이었다. 재판 도중 판사 앞에서 “내 아이가 아니니 길에 버리겠다”라고 말하는 정 씨에게 아이를 돌려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고아보다 못한 현실…영민이의 기본권, 국회가 나서야

차라리 영민이가 고아였으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국적법에 따르면 부모가 분명하지 않은 아이는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다. 그러나 아버지가 분명하지 않고 어머니는 중국 국적인 영민이는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할 수 없다.

그러던 중 정 씨가 중국으로 강제 출국되는 일이 발생했다. 뚜렷한 직장이 없던 정 씨는 친부 집에서 함께 지내다가 종종 노숙 생활을 반복했는데 그 과정에서 무전취식을 하며 경찰에 신고된 것이다. 정 씨가 구속되며 법무부의 출입국 관련 부서에 내용이 접수됐고,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정 씨는 강제퇴거 대상자가 됐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정 씨의 친부도 돌연 중국으로 떠나며 국내에는 영민이만 홀로 남았다.

영민이가 현재 머무는 곳은 단기 아동보호시설이다. 이미 지낼 수 있는 최대 기간은 넘겼고 담당 공무원들과 변호사의 노력으로 퇴소 기간을 겨우 연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은 정 씨를 설득하기 위해 직접 만나 커피 한 잔을 내밀며 달래도 봤다. 검사들도 정 씨가 DNA 검사를 받으러 가는 길에 동행하고, 영민이 측 국선 변호사에게 여러 차례 전화해 “영민이 잘 좀 부탁드린다, 잘 봐달라”며 각별한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모두의 노력에도 영민이는 출생신고가 되지 않으면 교육과 진학, 의료에서 권리를 누릴 수 없다. 곧 어린이집에 입소할 나이이지만 들어갈 수 없다. 곧 다가올 감기‧독감 유행으로 몸이 아파도 의료보험 혜택도 못 받는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관 (뉴시스)

영민이의 변호를 맡은 대한법률구조공단 국선전담 조수아 변호사는 “국내 아동의 경우 출생사실통보제에 따라 지자체장과 의료기관이 아이의 출생사실을 확인하고, 직권으로 출생신고도 할 수 있지만 외국인 아동은 예외”라며 “국회가 ‘외국인아동의 출생등록에 관한 법률안’을 제정한다면 영민이도 무사히 출생등록을 마치고 기본권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법률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영민이가 의료, 사회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다. 현재 상황에서 출생신고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셈이다. 정부와 국회는 지난해부터 이 법안을 심도 있게 논의하고 있다. 21대 국회 임기 종료일인 5월 29일까지 한 달 남짓 남은 시간 내에 법안이 처리되지 않는다면 영민이와 같은 무국적 유령아동은 ‘있지만 없는’ 아이로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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