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광장] ‘민원’ 아닌 ‘아이디어’란 인식

입력 2024-02-29 05:00수정 2024-03-03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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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희 협동조합 무의 이사장

최근 휠체어 이용 가수 강원래 씨가 영화관 안 계단 때문에 영화를 못 보고 돌아나왔다는 내용을 SNS에 올렸다. 이 포스팅이 화제가 되면서 휠체어석 비중이 너무 작고 특별관은 휠체어석 의무비중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게 알려졌다.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 편의증진보장법 시행령에 따르면 공연장, 집회장, 관람장, 도서관 등의 전체 관람석 또는 열람석 중 1% 이상을 장애인 좌석으로 설치해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개별 상영관별로 1% 이상 설치하는 게 해당 법의 취지’라며 2021년 CGV에 이 내용을 포함해 장애인 편의제공을 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권고사항은 말 그대로 권고일 뿐 의무가 아니고, 푹신한 의자나 4DX, 아이맥스 관람시설 등이 갖춰진 특별관들은 이 조항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정치권은 ‘장애인 접근성 향상을 위한 구조변경’을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법을 한결 더 강화하기로 했다.

이 기사를 보고 일본인 친구가 생각났다. “CGV 왕십리 ○관에 휠체어석 있나요? 롯데시네마 잠실 ○관에 휠체어석 있나요?”가 지난 번 질문이었다. “한국에 온 김에 ××영화 주연배우가 나오는 무대인사에 가려고 하는데 일일이 휠체어석 위치를 찾기 어렵네요.”

휠체어를 이용하는 구미코씨는 K팝과 드라마, 영화를 좋아해서 한국에 올 때마다 다양한 공연장, 영화관, 극장 등을 간다. 장애가 있는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에서 느끼는 정보의 벽은 매우 높다. 예를 들어 KTX 앱에서 외국인은 휠체어석을 예매할 수 없어서 현장에 가서 구매할 수밖에 없었다. 뮤지컬 휠체어석은 전화로만 예약을 받기 때문에 외국인들이 쉽게 살 수 없다.

휠체어석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앱에서 평균 4~5번씩 클릭해야 한다. 비장애인들은 그냥 한 번 클릭해서 좌석을 선택한다면, 휠체어 이용자들은 초기화면에 휠체어석 여부가 없어서 운이 좋으면 2번 더, 운이 나쁘면 10번 이상 클릭해야만 휠체어석을 예매할 수 있다. 3~4번 클릭해 들어갔는데 아예 휠체어석 자체가 없는 상영관임을 알게 됐을 때의 그 허탈함이란. 외국인은 그 어려움이 두 배는 더 할 것이다.

물리적으로 좌석을 많이 늘리는 게 좋겠지만 당장 어렵다면, 적어도 휠체어석 위치를 예약할 때 쉽게 알 수 있게 하는 건 어떨까. 장애 당사자들은 “어떤 지역 영화관은 뒤에 휠체어석이 있다”는 식의 정보를 커뮤니티나 카톡방에서 공유하곤 한다. 나도 이런 정보를 만들어서 뿌려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영화관 앱 본사에서 앱 UI(사용자환경)를 아예 친절하게 바꾼다면 어떨까. 휠체어석의 위치는 영화관이 다 알고 있다. 각 관람관 옆에 아예 휠체어석의 위치(맨 앞인지 뒤인지)와 숫자를 알려준다면 클릭 하나라도 줄어들 수 있다.

이렇게 하면 현장 직원들도 좀 더 응대가 쉽고, 휠체어석 활용도 높아질 것이다. 영화를 예매하러 들어갔다가 앱 클릭에 지쳐서 ‘그냥 영화 안 보고 만다’는 포기로 이어지는 것보다 정보를 정확히 제공해서 휠체어석 사용률을 높이는 게 영화관에서도 더 좋은 것 아닐까?

유럽에서 아이와 뮤지컬을 보았을 때 전화문의 없이 인터넷 예약을 통해 휠체어석을 잡을 수 있었고, 기차를 탔을 때도 휠체어석과 동반인석 모두 인터넷으로 쉽게 예약 가능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유럽의 접근성법이 우리나라에 비해 더 강화되어 있다는 게 한 이유다. 하지만 글로벌 시대에 장애고객들의 눈높이 역시 높아진다.

장애고객의 접근성 개선 건의를 ‘컴플레인’이나 ‘민원’으로 방어적으로 보는 대신, ‘좋은 아이디어’라며 수용하는 적극적인 태도가 있다면 어떨까. 전 세계 15%에 달하는 장애인구를 ‘민원인’ 대신 고객으로 보는 것이 당연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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