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석주의 컷] 자유롭게 살고, 마음대로 떠날 권리 '로기완'

입력 2024-02-27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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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장면 어땠어?" 영화관을 나오면서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다. 전반적으로 괜찮은데 특별히 할 말이 없는 영화가 있고, 흠이 있지만 특정한 장면이 뇌리에 남는 영화가 있다. 전자가 평범한 영화라면, 후자는 매력적인 영화일 것이다. 결국 좋은 영화란 장면이 기억에 남는 영화다. 한 편의 영화를 하나의 장면을 통해 알아보자.

▲영화 '로기완' 스틸컷 (넷플릭스)

넷플릭스 영화 '로기완'은 조해진 작가의 소설 '로기완을 만났다'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벨기에에 도착한 탈북민 기완(송중기 분)과 삶의 의미를 잃고 방황하는 여성 마리(최성은 분)의 만남을 통해 구원과 소통, 사랑과 위로의 이야기를 전하는 영화다.

영화를 연출한 김희진 감독은 "낯선 언어, 추위. 언제 난민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는 지 기약 없는 기다림 속에 놓인 사람들이 느낄 막막함과 불안함. 그리고 쓸쓸함의 정도가 가늠이 안 되는 그런 감정을 담아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인생 대부분은 고통으로 채워져 있지만, 그럼에도 가끔은 살 만한 순간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덧붙였다.

김 감독은 실제 유럽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고자 애쓰는 북한이탈주민들을 취재하는 등 영화에 사실적 색채를 더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영화 '로기완' 스틸컷 (넷플릭스)

이탈(離脫)에서 탈(脫)은 '벗어나다'라는 의미다. 태(脫)로 읽으면, '기뻐하다'라는 뜻도 된다. 속박과 굴레, 탄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은 인간의 본능이다. 그 욕망을 실현한 인간 앞에는 절대 행복이 펼쳐진다.

멜로드라마의 외피를 두른 '로기완'은 벗어남의 기쁨을 말하는 영화다. 불편한 관계로 처음 대면한 기완과 마리는 옷과 밥을 나누며 점차 가까워진다. 두 사람의 평화로운 사랑도 잠시, 폭력 조직과 연루된 마리는 세력 다툼을 피하고자 급히 벨기에를 떠난다. 그리고 1년이 흐른다.

영화 후반부, 난민의 지위를 획득한 기완은 마리를 찾아 떠나기 위해 공항으로 간다. 직원이 "왕복으로 드릴까요?"라고 묻자 기완은 "아니요. 편도로 주세요"라고 답한다. 그리고 아래의 대사를 마음속으로 읊조린다.

제가 그토록 바랐던 것은 이 땅에 살 권리가 아니라 이 땅을 떠날 권리였다는 것을. 오늘에야 깨달았습니다.

요컨대 기완이 난민의 지위를 획득하기 위해 벨기에에서 분투하는 과정은 정주(定住)가 아닌 탈주(脫走)를 위한 몸부림이었다. 기완이 그토록 갖고 싶었던 건 벨기에 거주 확인증이 아니라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권리였다.

영화는 폭력 조직으로부터 쫓긴 마리가 어디로 떠났는 지 알려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관객들은 기완이 마리를 만나기 위해 어디로 떠났는 지 알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장소가 아니다. 자신의 육체를 원하는 곳에 두려는 인간의 탈주적 움직임이다.

송중기와 최성은의 열연이 빛나는 '로기완'은 내달 1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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