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에세이] 결혼비용이 3억 원? 전 그렇게 안 썼는데요

입력 2024-02-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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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19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0년 추계 제54회 웨덱스코리아 웨딩박람회를 찾은 예비 부부들이 상담을 받고 있다. (뉴시스)

30대 초반 ‘돈이 없어서’ 결혼을 포기했다. 그러다 30대 후반이 돼 결혼했다. 마찬가지로 돈은 없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결혼의 조건으로서 돈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결혼한 지인들을 보니, 결혼 자체에는 그리 큰 돈이 들지 않았다. 결혼식에 필요한 비용은 대부분 축의금으로 충당됐다. 우리 부부도 결혼식을 올린 뒤 비용을 계산해보니 결혼비용으로 ‘내 주머니에서’ 빠져나간 돈은 없었다.

가장 많이 든 비용은 식대다. 신랑 측 견적은 1000만 원이 좀 덜됐다. 그런데 예식장에 빈손으로 오는 하객은 없다.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한 지인들도 축의금은 낸다. 보증인원을 못 채워 ‘생돈’을 지출한 상황이 아니라면, 식대를 계산한 뒤에도 꽤 많은 축의금이 남는다. 식대를 제외한 결혼비용은 예물(결혼반지)과 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스드메), 예식장 대관료와 생화 장식, 스냅촬영, 주례·사회·축가 답례 등이다. 총 1000만 원가량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부분 결혼 전 지출한 비용이다. 이 비용도 남은 축의금으로 전액 보전했다. 그래도 돈이 남았다. 신부 측 예식장 대관료와 식대도 비슷하게 들었다. 역시 축의금으로 모두 해결했다.

집값은 애초에 결혼비용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혼자 살았어도 ‘내 집’을 갖고 싶었을 거다. 특히 집값은 자산 취득비용이다. 지출 후 회수가 불가능한 매몰비용이 아니다. 신혼여행도 결혼비용으로 여기지 않았다. 결혼을 계기로 여행했을 뿐, 여행도 일상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다만, 미혼 청년들이 생각하는 결혼비용은 이보다 높다. 들어올 돈을 고려하지 않고 나갈 돈만 생각한다. 또 주거 마련비를 결혼비용으로 인식한다. 일부는 ‘호텔 예식’을 결혼비용의 기준으로 삼는다. 이렇게 실질적 결혼비용과 무관하게 인식적 결혼비용은 ‘억대’가 된다.

이런 인식이 만들어진 배경은 결혼정보회사,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유통되는 ‘거품’ 정보다.

결혼정보회사 가연은 지난달 16일부터 3일간 ‘2024 결혼비용 리포트’라는 주제로 5년 차 이하 신혼부부 1000명을 설문조사했다. 그 결과, 총 결혼비용은 3억474만 원이었다. 이 조사 결과는 여러 언론사에서 인용 보도됐다. 그런데, 여기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이 조사의 표본오차는 80% 신뢰수준에 ±2.03%포인트(P)다. 신뢰수준이 일반적인 여론조사(95%)보다 낮게 설정됐다. 100번 조사를 반복하면, 20번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단 의미다. 여기에 결혼비용의 범위가 넓다. 자산 취득비용인 주거 마련 비용에 신혼여행 경비까지 포함됐다.

무엇보다 이 조사에는 비용 조달방식이 없다. 조사된 결혼비용은 ‘순지출’이 아니다. 현실적인 결혼비용을 따지려면 지출에서 수입을 뺀 순지출을 계산해야 한다. 결혼 과정에서 5000만 원이 지출됐어도 부모 증여, 축의금 등으로 5000만 원의 수입이 발생했다면 순지출은 0이다. 총지출과 순지출을 구분하지 않으면, 총지출이 순지출로 오인될 수 있다. 가연의 설문조사에서 신혼집 마련 비용을 뺀 결혼 준비비용은 6298만 원이었다. 순지출이 아닌 총지출이다.

다른 요인은 SNS 활성화다. SNS에는 원래 ‘자랑거리’만 올라온다. SNS에서 ‘평균’은 국민의 평균적인 삶이 아니다. 삶을 과시하고 싶은 이들이 선별해 올린 자랑거리의 평균이다.

자랑거리가 실제 자랑할 만한 일인지도 불분명하다. 월 200만 원을 버는 월급쟁이가 7000만 원 상당의 수입차를 5년 전액 할부로 구매해 SNS에 올렸다고 치자. 이 월급쟁이는 할부금을 포함해 월 150만 원 이상 차 유지비로 지출하면서 끼니를 줄여야 버틴다. SNS에는 이런 사정이 생략된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프러포즈 선물이 몇 개월 할부인지, 호텔 예식에 마이너스통장을 얼마나 끌어썼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저 SNS에 올라온 삶의 단편적인 모습이 보통의 삶으로 비치고, 결혼에 대한 눈높이가 높아질 뿐이다. 몇몇은 박탈감과 좌절감을 느낀다.

실제 결혼비용과 무관하게 인식적 결혼비용이 오르면 결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거부감이 생긴다. 최악의 결과는 ‘결혼 포기’다.

이런 상황을 해소하려면 정부도 일정 부분 역할이 필요하다. 첫째는 결혼비용 거품 제거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나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등 관계부처가 실제 결혼비용을 조사·발표하는 게 방법일 수 있다. 매몰비용이 아닌 자산 취득비용, 편차가 큰 신혼여행 경비 등을 별도 집계하고, 결혼 과정에서 발생한 ‘수입’을 함께 조사하면 결혼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현실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저출산 극복이 정말 간절하다면, 이 정돈 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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