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호의 정치원론] 다양성 아우르는 큰 우산 '정당'

입력 2024-02-07 05:00수정 2024-02-24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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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개방·숙의·균형 어우러져야 ‘공당’
당내 비주류 활발해야 사당화 막아
비판 용인할때 포용적 리더십 싹터

선거철을 맞아 정당들에 대한 국민의 응원과 비판이 동시에 커지고 있다. 이 시점에 정당의 의미를 되돌아보자. 군소정당이 아닌 적어도 수권(受權)을 지향하는 정당이란, 유권자의 다양한 입장을 모아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를 국정에 반영코자 서로 경쟁하는 정치체를 말한다. 공당(公黨)으로서 각종 다양한 사람을 포괄하는 큰 우산이다.

인기 정치인을 따라다니는 팬클럽이 아니다. 똑같은 생각이나 이해관계로 뭉친 사익단체도 아니다. 강한 기율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관료나 군대도 아니고, 조폭 집단은 더더욱 아니다.

안타깝게, 오늘날 한국 정치를 주도하는 여야 거대 정당들은 이런 조직들과 비슷해졌고 원래의 의미를 잃었다. 강성 지지자는 당과의 일체감보다는 정치인 개인을 향한 충성심으로 뭉친 팬클럽 회원처럼 움직인다. 핵심 수뇌부와 입장을 달리하면 심한 구박·압박을 받아 당내에서 발붙이기 힘들어지는 모습은 균질적 사익단체를 연상시킨다. 전략·전술적 계산에 따라 하향식으로 작동되는 위계질서는 관료, 군대, 조폭 못지않다. 전혀 큰 우산답지 않다. 당내 비주류는 거의 사라졌다. 당내 다양성, 상향식 표출, 열린 소통, 조화와 균형 등의 덕목도 함께 사라졌다.

이런 상황에서 유승민 전 의원의 국민의힘 잔류 결정은 신선한 충격을 준다. 그는 당내 비판자를 자처하며 당 지도부, 특히 최고 권력자에 고언, 때론 독설마저 마다하지 않는다. 당을 팬클럽, 사익단체, 여타 위계적 조직처럼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목에 걸린 가시이다. 그만큼 당내 따돌림과 차별적 압박이 그를 따라다녔다. 당을 나가라는 노골적 요구도 들렸다. 이런 악조건에도 그는 잔류를 택했다. 이준석, 이낙연 등 탈당·창당 바람을 일으키는 다른 정치인들은 당내에서 버티는 게 오죽 힘들었으면 탈당했겠는가. 그런데도 유 전 의원은 이들과 달리 당에 비주류로 남기로 함으로써 큰 우산이라는 정당 본연의 의미를 존중했다.

당내 비주류는 당의 체질을 바꾸고 건전한 정당 민주주의를 세우는 데 꼭 필요한 존재다. 비주류가 견제 역할을 할 때 당 수뇌부는 함부로 한쪽으로 독주할 수 없고, 당내 다양성·개방성·숙의성·균형성 등의 가치가 방치되지 않을 수 있다. 당내에서 밀린다고 뛰쳐나간다면 이 중요한 가치들은 누가 지킬 건가. 고난과 제약이 따르나 당내 비판자로 남아 이 가치들이 묻히지 않도록 투쟁하는, 그래서 사당화(私黨化)를 막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선거 승리나 여론 지지를 얻기 위해서도 당내 비주류는 유용하다. 이념색채가 짙거나 단일 쟁점을 절대시하는 군소정당이 유권자 일부만 바라보는 것과 달리, 수권 정당은 유권자의 넓은 저변을 확보해야 하고 특히 중도 성향자에게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 상황에 따라 전략적 극단주의로 간다고 해도 중도 확장 노선을 병행하지 않을 수 없다. 이때 당내 주류만으로 역부족이고, 비주류가 유용해질 수 있다.

당의 극단화를 막고 중도층의 호응을 얻어 당세를 넓히는 비주류의 역할은 국가 차원에서도 순기능을 발휘한다. 오늘날 국정 난맥은 주로 양대 정당의 과도한 양극화에서 기인한다. 그런 만큼 당내 비주류의 극단화 제동 기능은 매우 중요하다. 국정 난맥상을 악화시키는 또 다른 요인으로 정당정치의 제도화 붕괴를 꼽을 수 있다. 정당정치의 틀과 구도가 계속 바뀌는 속에서 중심 잡힌 국정운영은 불가능한 일이다. 혼란스러운 탈당·창당·분당의 악순환보다는 당내 비주류로 잔류해 안정적 제도화를 기하는 것이 절실히 요구되는 이유이다.

당내 비주류가 긍정성을 발휘하려면 당장 힘들어도 당에 남아 고군분투하는 용기 있는 정치인들이 있어야 한다. 더 근본적으로 중요하게, 정당은 큰 우산이라는 인식이 당연시돼야 하고, 당내 이견과 비판을 용인하는 포용적 분위기가 퍼져야 한다. 좋은 국정운영을 위해 공식적 ‘악마 옹호론자(Devil’s Advocate)’ 직을 두기도 하는데, 당내 비주류를 포용하는 정치력을 방기하면 되겠는가.

당내 이견을 배신자 프레임에 넣어 배척할 때 결국 당에 깊은 균열이 생겨 정치적 자폭으로 이어질 수 있음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사건이 잘 보여준다. 당시 당내 포용적 리더십이 발휘되었다면 다수당 소속 대통령이 탄핵당했겠는가.

사실, 당내 다양성과 비판이 당연시된다면 주류·비주류의 구분도 부적절하다. 이런 차별적·집단주의적 표현의 사용이 부끄러운 일이 되는 날이 오기를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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