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에겐 죽으러 가는 곳, 보호자엔 가족과 싸우는 곳” [엔데믹은 남 얘기]

입력 2024-01-17 14:01수정 2024-01-17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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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병원에 대한 인식 변해야”…김기주 대한요양병원협회 부회장 [인터뷰]

“엔데믹·초고령화 시대…요양병원 제2의 집 인식 생겨야”
“요양병원, 일상복귀 돕는 안전망으로 여겼으면”

▲김기주 대한요양병원협회 부회장(선한빛요양병원 원장) (한성주 기자 hsj@)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이곳의 도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 튼튼한 사회 안전망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팬데믹이 사회 곳곳을 휩쓸고 지나갔다.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장소는 의료기관, 그중에서도 요양병원이다. 기저질환이 있는 고령의 환자들이 함께 지내는 공간에서 집단 감염이 빈발했다. 일부 노인들을 위한 병원으로 여겨졌던 요양병원에 사회적 관심이 집중됐다.

김기주 대한요양병원협회 부회장(선한빛요양병원장)은 “노인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요양병원이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기관으로 기능하게 된다”라며 “팬데믹 이전과 이후는 달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본지는 최근 경기도 광주시 선한빛요양병원에서 김 부회장을 만나 코로나19가 요양병원에 남긴 흔적을 돌아봤다.

17일 질병관리청 집계에 따르면 코로나19 발생 이후 지난해 6월까지 요양병원·요양시설 7773곳에서 32만5029명의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요양병원 1곳당 평균 52명, 요양시설 1곳당 평균 24명이 집단 감염된 셈이다. 요양병원에서는 그간 미비했던 감염관리 체계가 빠르게 확립됐다.

김 부회장은 “대부분의 환자 곁에는 간병인이 있는데, 간병인은 병원이 아닌 외부 업체 소속이라서 병원이 직접 감염 관리 교육을 할 수 없었다”라며 “그간 업체를 통해 법적인 문제가 되지 않는 선을 지키며 간병인 대상 교육을 꾸준히 시행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감염관리실도 새롭게 만들어 담당 간호사 2명을 두고 운영 중이다”라며 “병원 내 감염 관리에 이전보다 많은 인력과 비용을 투입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경기도 광주시 선한빛요양병원 내 직원식당.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과 방역 수칙을 준수하고 있다. (한성주 기자 hsj@)

코로나 방역 완화됐지만 요양병원은 항상 긴장 상태

방역과 감염 예방을 위해 노력했지만 코로나19를 완벽히 막아내기는 불가능했다. 정부가 규정하는 코로나19 고위험군은 면역저하자, 65세 이상 노인, 감염취약시설 입원·입소·종사자 등이다. 고위험군이 집중된 요양병원은 고전했다. 김 부회장이 운영하는 선한빛 요양병원에는 약 150명의 환자와 간병인 50여 명이 지내고 있다.

김 부회장은 “요양병원은 국내에서 중환자실 다음으로 중증 환자가 많은 곳”이라며 “코로나19로 인한 사망뿐 아니라 코로나19 합병증으로 인한 사망 사례도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종교 활동이나 단체 활동을 할 수 있는 홀은 한동안 폐쇄됐고, 직원 식당은 지금도 이용 시간을 조율하며 혼잡도를 관리하고 있다”라며 “정부의 방역 정책이 대폭 완화했지만, 병원 내에서는 이전과 같이 항상 긴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백신과 치료제가 등장하면서 요양병원 내 코로나19 확산을 진압할 수 있었다. 현재 코로나19 백신은 전 국민 대상 무료로 접종되고 있으며, 확진된 고위험군 환자에게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정식 허가한 ‘팍스로비드’나 긴급 승인 상태인 ‘라게브리오’ 등의 경구투여 치료제를 처방한다.

김 부회장은 “질병청 지침에 따라 팍스로비드가 먼저 처방되고, 라게브리오는 가루약을 복용해야 하거나 콧줄을 달고 있는 환자, 약물 상호작용에 문제가 있는 환자에게 처방할 수 있다”라며 “요양병원 입원 환자들은 대부분 복용 중인 약물이 있고 삼킴 곤란이 있는 환자도 있어 코로나19 사망률 감소에 백신과 치료제의 영향이 컸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요양병원과 같이 고위험군이 모여있는 기관은 다양한 치료 선택지를 계속 확보해야 한다”라고 부연했다.

코로나19와 함께 찾아온 고립감은 백신과 치료제로 해소할 수 없었다. 보호자와 유일한 연결고리였던 면회가 금지되자 환자들은 활력을 잃었다. 보호자들은 환자를 직접 돌보지 않는다는 이유로 느끼는 죄책감이 가중됐다. 요양병원 대면 면회는 금지 3년만인 지난해 1월 재개됐다.

김 부회장은 “면회가 불가능했던 기간이 상당히 오래 지속되면서 환자와 보호자 모두 우울감을 느꼈다”라며 “특히 대중 매체를 통해 일부 요양기관의 열악한 시설이 드러나면서 불안해하는 보호자들이 많았다”라고 말했다. 이어 “보호자들은 요양병원에 가족을 맡겼다는 생각에 죄책감을 갖는 경우가 흔한데, 얼굴을 볼 기회가 없어지니 더욱 안타깝고 고통스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광주시 선한빛요양병원 내 운동 시설. 해당 공간은 환자들이 공동으로 이용하고 있어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에 따라 이용이 제한됐다. (한성주 기자 hsj@)

요양병원에 대한 인식 변해야…정부 지원 확대 등 제도 개선도 필요

팬데믹을 지나며 얻은 경험으로 요양병원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 김 부회장의 바람이다. 정부는 지난해 7월부터 등급별 급여기준에 따라 입원환자 입원 1일당 1회 산정 가능한 '요양병원 감염예방관리료'를 신설한 바 있다.

김 부회장은 “감염관리료가 생기면서 요양병원이 감염 예방 활동에 나설 근거가 마련됐지만, 전담 간호사 1명의 인건비도 충당하지 못할 정도로 적다”라며 “감염 예방사업, 감염관리위원회, 방역 물품 등에 많은 투자가 필요한데, 전적으로 병원 경영진의 의지에 달린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요양병원에 대한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돌봄이 필요한 노인 인구가 늘어나면서다. 지난해 70대 이상 인구는 631만9402명으로, 주민등록 인구통계 집계 이래 처음 20대 인구(619만7486명)를 추월했다. 전체 1인 세대 가운데 70대 이상의 비율은 19.66%로 가장 높았다.

따라서 요양병원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이에 김 부회장은 요양병원을 '내가 경험하게 될 수도 있는 공간'으로 재인식할 것을 권했다. 김 부회장은 “대부분 사람들은 요양병원을 자신과 관련이 없는 곳으로 여긴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환자들에게는 죽으러 가는 곳, 보호자들에게는 돈 많이 드는 곳, 가족들끼리 싸우는 곳으로 묘사된다”라며 요양병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지적했다.

이어 그는 “다른 병원과 마찬가지로 요양병원 의사들도 환자를 퇴원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라며 “요양병원은 치료와 돌봄을 함께 제공해 환자와 보호자 모두의 일상생활 복귀를 돕는 안전망”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김 부회장은 “누구나 요양병원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을 맞을 수 있다”라며 “우리 사회에서 요양병원이 ‘치료를 받고 다시 걷게 되는 곳’, ‘잠시 머물렀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곳’으로 기능하게 되길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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