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너머] 의사 선생님, 몇 학번이세요?

입력 2024-01-1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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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가의 모습을 보면 영리병원을 금지한다는 원칙이 무색하다. 동네 의원은 환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간판에 원장의 출신 대학 로고를 새긴다. 호텔 같은 건강검진센터에서는 부위별 검사를 묶어 여행 패키지처럼 판다.

환자들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서울의 5개 대학병원을 최고로 꼽는데, 이 중에서도 병원마다 '잘 보는' 병이 다르다. 병명과 병원, 교수의 이름을 나열한 명의 리스트가 인터넷에 떠돈다.

필수의료, 지방의료, 공공의료가 무너진다는 위기 의식이 자리 잡았다. 가장 먼저 체감할 수 있는 문제점은 의료의 서열화다. 의대생이 아닌 누구라도 피안성(피부과·안과·성형외과)은 인기 있고,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과)는 기피과라는 사실을 안다. 큰 수술은 이왕이면 서울로 가는 게 좋다는 생각이 자연스럽다.

이런 환경을 방치하고 의사만 늘려 공공·지방의료를 채운다는 정책이 성공할지 미지수다. 인원이 늘어난다고 피안성과 서울의 대학병원 인기가 식지는 않는다. 또 의사는 공산품처럼 간단히 찍어낼 수 없다. 양성 인프라를 확충하지 않은 채 학생을 더 들여보내면, 교육의 질은 하락한다. 2018년 서남의대 폐교 이후 편입생을 받은 전북의대는 정원이 110명에서 142명으로 늘어나면서 강의실 협소, 실습 기회 부족 등의 문제를 겪었다. 정부가 의료를 상품으로 취급하고 서열화하는 사회에 대해 고민한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의료 서열화 사회에서는 늘어난 의사와 공공병원도 서열 한 층에 이름을 올리게 될 뿐이다. 높은 확률로 상위 서열에는 진입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경정맥을 수술할 역량이 있는지를 둘러싸고 서울과 부산의 쟁쟁한 대학병원들이 신경전을 벌이는 마당에 공공·지방의료기관의 선방은 언감생심이다. 군병원이나 지방 의료원처럼 의사도 환자도 가기 싫어하는 공공시설로 남겨질 것을 걱정하게 된다.

의료가 상품인지, 공공재인지 명확히 짚을 필요가 있다. 먼 미래 70대가 된 내가 놓여있을 의료 환경을 상상하면 캄캄하다. 명문대 병원은 여전히 문전성시인 가운데 환자들이 공유하는 명의 정보는 더 구체화할지 모른다. “그 의사가 잘 봐준대요. 서울에서 졸업해서 서울 큰 병원에만 있었고, 25학번 윗세대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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