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유출, 해외선 '간첩' 엄벌하는데…‘간첩죄’ 적용 갑론을박 [위협받는 기술안보]②

입력 2023-12-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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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유출 양형기준 지나치게 낮다는 비판
"해외처럼 기술유출, 간첩죄 적용" 法 발의
"간첩-기술유출, 보호법익 불일치" 지적도

최근 기술유출 범죄가 심각해지지만 이에 대한 처벌수위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양형기준이 지나치게 낮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기술유출 범죄에 '기술 간첩죄'를 적용해서라도 처벌 형량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국가안보법의 특성을 기업의 기술 유출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지법 형사 14단독(이지연 판사)은 지난달 산업기술보호법위반, 부정경쟁방지법위반(영업비밀국외누설 등) 등 혐의를 받는 삼성전자 전 상무 A(65) 씨의 보석을 허가했다. 보석보증금은 5000만 원이었다.

A 씨는 2018년 8월부터 2019년 2월까지 삼성전자의 영업비밀인 반도체 공장 BED와 공정 배치도, 공장 설계도면 등을 부정 취득·사용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는 회사가 30년 동안의 연구개발을 통해 얻은 자산으로, 최소 3000억 원에서 최대 수조원가치로 평가된다.

법원이 A 씨 보석을 허가하기 이틀 전, 대통령실은 산업기술 보호 강화를 위해 국정원, 법무부, 검찰 등으로 구성된 ‘범정부 기술유출 합동 대응단’을 출범시킨 바 있다. 기술 유출 관련 범정부 대응이 강화하는데, 법원의 안일한 인식이 다시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그간 해외 기술 유출 범죄율을 낮추기 위해서는 법원의 양형 기준이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산업기술보호법에 명시된 기술 유출 최고형량은 국내 10년·국외 15년이다. 하지만 양형 기준은 기본 징역 8개월~2년에 가중처벌을 하더라도 최대 4년이다. 국외 기술 유출은 기본 징역 1년~3년 6개월에 가중 처벌을 해도 최대 6년에 불과하다.

범죄 수익이 특정되지 않는 경우 추징할 수 없다는 기존 판례에 따라 산업 기술을 유출해도 실형을 살고 수익금은 그대로인 실정이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 국기게양대에 검찰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연합뉴스)

반면 해외 주요국들은 법안을 수차례 개정해 엄벌에 처하고 있다. 미국은 ‘경제스파이법(EEA·Economic Espionage Act)’에 따라 국가 전략기술을 해외로 유출하다 적발되면 간첩죄 수준으로 가중처벌한다. 대만도 ‘경제간첩죄’를 적용하고, 일본은 형량과 벌금을 대폭 높였다.

우리 국회에도 기술 유출 범죄를 ‘간첩죄’로 규정해 처벌하자는 법안들이 발의돼 있다. 기술 유출에 대한 처벌 수위가 지나치게 낮다는 여론이 반영된 것으로, 국가 안전에 위험이 될 수 있는 기술유출을 간첩행위로 적용하자는 게 골자다.

현재 간첩 처벌은 형법 98조(간첩)에 따라 이뤄진다. 이 조항은 ‘적국을 위해 간첩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하는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정한다. 국가보안법 4조(목적수행)는 형법 98조에서 정의한 간첩 행위를 했을 때 처벌한다고 규정한다.

발의된 법안은 △국가핵심기술을 해외로 유출한 사람의 형량을 ‘간첩죄’에 준하는 7년까지 끌어올리는 내용(김성원‧임병헌 의원 등) △간첩의 의미를 ‘적국을 위해 간첩한 자’에서 ‘외국 또는 외국인 단체를 위해 간첩한 자’로 확대하는 내용(조수진‧홍익표 의원 등) 두 갈래로 나뉜다.

검찰에서는 ‘경제간첩죄’ 적용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정해둔 것은 아니지만, 일부 찬성 분위기가 감지된다. 수도권 한 부장검사는 “기술 유출은 기업뿐 아니라 국가에 큰 손해를 끼칠 수 있는 중대 범죄로, 간첩죄로 확대하자는 논의는 의미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로스쿨 명예교수는 “산업 분야의 패권 경쟁이 가속하고 있는 상황에서 군사기밀 유출행위만을 간첩 행위로 규정하는 건 적절치 않다”며 “국내에서 적발된 산업스파이는 산업기술보호법으로 솜방망이 처벌 받을 게 아니라 간첩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검찰에서 간첩 사건을 다수 다뤄본 최창민 법무법인 인화 변호사는 “(양형이 낮다보니) 처벌 수위를 높이고자 하는 의지도 반영된 것”이라며 “같은 기술 유출이라 할지라도 북한(적국)이냐 다른 국가냐에 따라 혐의 적용이 달라져 형평성 문제도 제기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위원은 “기존 시행법의 법정형을 높일 필요성은 있다”면서도 “간첩죄는 국가적 법이며 공공의 안전을 위한 것인데, 기술 유출은 기업의 이익과 더 가까워 간첩죄로 포섭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두 법의 보호법익이 일치하지 않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정성희 수석전문위원도 올해 3월 검토보고서를 통해 “외국에 대한 산업기밀 등의 누설행위에 대해 현행 산업기술보호법, 부정경쟁방지법 등으로 처벌하고 있다”며 “산업기밀을 유출한 경우를 간첩죄로 처벌하게 된다면 이들 법률 간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형벌체계상의 균형성을 위한 법정형 정비 등 종합적인 고려가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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