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의학교육 기반 지금도 열악
수가 급증도 난제…다각적 모색을
전국 40개 의과대학은 2025학년도 입학정원을 2151∼2847명 증원해줄 것과 함께 2030학년도까지 매년 3000명 이상 증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 2018년 기준 인구 1000명당 의사 수 2.8명인 현실이 2030년에는 3.14명으로 늘어나 선진국 수준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읍·면 단위 및 인구 20만 규모 중소도시의 열악한 의료 현실에 비추어 증원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재 3058명인 의대 입학정원이 매년 2배 가까이 늘어나는 이러한 요구는 신중해야 한다. 생명을 다루는 의사 양성은 오랜 시간 고도의 전문지식을 요구하여 양적 증원이 능사가 아닐 뿐만 아니라 생각처럼 성사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전문직의 대국민 서비스에 관한 문제와 의사 양성 내부 문제로 나눠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의대 정원 증원이 능사가 아님은 해방 이후 법조인 증원 현황을 보면 알 수 있다. 1947년 시작된 조선변호사시험과 이어진 고등고시 사법과 그리고 1963년 시작된 사법시험으로 2017년까지 배출된 법조인은 총 2만766명이다. 그리고 2012년 이후 현행 변호사 시험으로 약 10년간 배출된 변호사만 약 2만 명이다. 정원의 큰 증가는 어김없이 신군부 집권과 문민정부 이후 정치적 결단(?)으로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국민 체감 법률서비스는 이처럼 폭발적 증가만큼 나아지지 않았으며, 서비스 수가(酬價)와 접근성도 그만큼 개선되지 않았다. 따라서 의사 수를 마냥 늘린다고 의료서비스가 개선된다고 단정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면 왜 그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는지 의료 내부 사정을 살펴보아야 한다.
첫째, 의대 정원의 급격한 증가로 의학교육의 내실을 저해할 수 있다. 현행 의학교육 기반과 시설 현황을 면밀하게 현장 실사해야 하지만 교육 당국의 정원 심의는 상당 부분 형식적으로 이루어진다. 지방캠퍼스로 인가된 의학교육이 서울캠퍼스에서 이루어지는 상황도 당국의 감독이 허술함을 보여준다.
둘째, 의학교육 인력 확보 문제다. 임상 경험이 풍부한 전문의만 동원하면 의학교육 문제가 해결된다는 인식은 좋은 발상이 아니다. 우리나라 기초의학 인력은 매우 부족하다. 생화학, 해부학, 병리학, 생리학, 약리학, 조직학 등의 기초의학 교육인력 확충이 의대 정원 증원의 선결과제가 되어야 한다.
셋째, 전체 의료 수가는 의사 증원 이상으로 증가한다. 의료 수가 문제를 건강보험으로 대응한다면 그것은 곧 기하급수적인 재정 증가로 이어진다. 혹자는 의사들의 사명감과 공적 책무성을 내세워 수가를 묶을 수 있다고 보지만, 그것은 신기루와 같은 허상에 불과하다. 전문의 자격 취득에 병역을 필해야 하는 남자의 경우 14∼15년 소요되므로 의사 지망생에게 공적 의무만을 강조한다는 것은 전체주의 발상으로 의료서비스 질 저하로 이어진다. 자유사회에서 의사들도 자기애에 기대야 한다(▶본지 2023년 11월 13일자 칼럼 참조). 의사들의 집단 이기주의를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허상에 가까운 공적 가치를 내세워 공공의대 설립 운운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그릇된 주장이다.
이러한 내적 사정에 더하여 정부의 추진 방식도 문제다. 당국은 병원(대학)의 요구를 중심으로 증원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지만, 이는 편파적 방식이다. 국민의 입장에서 병원만이 의료 공급자가 아니다. 개별의사도 공급자다. 또한 병원과 의사만 놓고 보면 병원이 수요자이고 의사가 공급자다. 지난달 22일 정부와 의사협회 간 의대 정원 논의가 10분 만에 파행된 이유는 병원과 다른 의사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아서다.
결론적으로 앞서 살펴본 법조인 증가처럼 정치적 계기와 판단으로 의사 증원을 결정해선 안 된다. 시급한 현안인 의료 사각지대 해소 문제는 원천적으로 의대 정원 증원이 유일한 답이 아니므로 지방병원 증축 및 의료인 지방 유입에 따른 각종 규제 철폐, 외국 의료인 진료의 한시적·제한적 허용 등 다양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의대 정원 문제도 병원(대학) 측만 아니라 의사 측과도 긴밀하게 소통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세계적으로 의료서비스 질이 높다고 평가받는 우리 의료체계를 급격한 증원정책으로 무너뜨려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