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밤부터 북쪽에서 찬 바람이 불면서 미세먼지를 쓸어갔다. 소위 말하는 ‘삼한사미(三寒四微)’의 전형적인 현상이다.
얼마 전 올해 미세먼지가 예년보다 다소 심할 거라는 예보를 들었는데 반갑지 않은 소식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에너지 공급이 불안정해지자 감소 추세이던 석탄 사용이 다시 늘어난 결과다.
미세먼지는 시야만 흐리는 게 아니라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각종 호흡기 질환은 물론 심혈관계질환, 우울증, 심지어 치매의 위험성도 높인다. 이는 조기 사망으로 이어진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15년 한 해 지구촌에서 미세먼지로 인한 조기 사망자 수는 무려 420만 명으로 전체 사망자의 7.6%를 차지했다. 특히 중국과 인도는 각각 110만 명에 이른다. 우리나라 데이터는 없지만, 한국보다 공기가 맑은 일본이 6만 명인 걸 보면 3만 명은 되지 않을까.
지난주 학술지 ‘네이처’에는 미국의 석탄 화력발전소에서 나온 미세먼지로 지난 22년 동안 65세 이상 인구 가운데 46만 명이 추가로 사망했다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 그나마 다행인 건 각종 환경 규제와 석탄 화력발전소 폐쇄로 2020년 추가 사망률이 1999년의 3% 수준까지 떨어졌다는 사실이다. 전력 생산에서 석탄 화력발전의 비율이 60%나 되면서도 최근 석탄 화력발전소를 더 짓기로 한 중국 옆에 있는 우리로서는 미국의 추세가 거꾸로 적용되는 셈이니 마음이 무겁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겪는 미세먼지 피해는 6600만 년 전 지구의 생물들이 마주한 대재앙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지난달 학술지 ‘네이처 지구과학’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당시 거대한 소행성 충돌로 생겨난 미세먼지가 태양을 가려 생물 대다수가 죽고 심지어 공룡을 비롯해 전체 종의 76%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6600만 년 전 어느 날 멕시코 유카탄반도에 지름이 무려 10~15킬로미터에 이르는 소행성이 45~60도 각도로 진입해 충돌했고 이 여파로 지구 전역에 산불이 나고 엄청난 양의 먼지가 대기를 가렸다. 그 결과 햇빛이 차단되면서 식물이 한동안 광합성을 멈추자 동물이 굶주렸고 아울러 지구가 냉각되며 결정타를 안겼다는 시나리오는 1980년 이미 나왔다. 그러나 이런 효과가 대멸종을 일으키기에는 충분치 않다는 연구 결과가 이어지면서 충돌 이후 일어난 대규모 화산폭발이 진짜 원인이라는 등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벨기에왕립관측소가 주축이 된 다국적 공동연구팀은 소행성이 떨어진 유카탄반도에서 3000㎞ 떨어져 있는 미국 노스다코타주 타니스의 6600만 년 전 형성된 퇴적층 시료를 분석했다. 당시 충격이 워낙 컸기에 이 지역까지 쓰나미가 몰려왔고 충돌 파편이 튀었다. 그리고 대기를 덮은 먼지가 가라앉으며 1.3미터 두께로 쌓인 것이다.
연구자들은 레이저 장비로 퇴적암을 이루는 먼지 입자의 크기 분포를 분석했다. 그 결과 지름 0.8~8마이크로미터로 미세먼지에 해당하는 크기가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미세먼지의 성분은 규산염으로, 당시 소행성이 충돌한 지각의 화강암이 산산조각이 나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그 양이 무려 2조 톤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구 규모의 대기 및 해양 운동을 계산하는 일반순환모델에 이 수치를 입력해 시뮬레이션하자 미세먼지의 영향이 강력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즉 충돌 뒤 거의 2년 동안 식물이 광합성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대기 성층권에 미세먼지가 머물렀고 그 뒤 수년 동안 지구 냉각 효과가 유지됐다. 15~20년이 지난 뒤에야 지구는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지만 이미 많은 종이 멸종한 뒤였다.
오늘날 미세먼지로 인류가 멸종하지는 않겠지만, 어쩔 수 없는 천재지변이 아니라 의지만 있으면 안 하거나 적어도 줄일 수 있는 활동으로 많은 사람이 건강을 잃는 현실이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