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가을 세간의 관심은 카카오의 위기론에 주목했다. 경영진 먹튀, 분식회계, 주가조작, 독과점 논란 등 각종 논란을 일으키는 카카오 공동체에 대해 금융감독원은 물론이고 여론과 시장의 불신감이 전례없이 컸다. 무엇보다 넘지 말아야 할 최후의 선, 주가조작 혐의로 카카오 창업자 김범수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의 복심이라 불리는 투자총괄대표가 구속된 것은 큰 배신감을 안겨주는 듯 싶다. 앞으로 카카오가 어떤 대책을 내놓을 지가 관건이지만, 이런 행태를 보였다면 가혹한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당장 눈에 띄는 대목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창업자 김범수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이 비상대책회의 지휘봉을 잡았다는 점이다. 각 공동체 준법 경영 실태 점검하는 기구 마련하고, 신사업·대규모 투자 때 사회적 영향에 대한 외부 평가 시행 등에 대한 의견을 듣는 기구를 만들었다. 준법 감시를 위해 외부통제까지 제도화 하겠다는 건 민간 기업으로서 특단의 조치다. 굴지의 IT기업 창업자들이 실질적으로 경영에서 손을 떼고, 의장직을 맡거나 명예직에 가까운 직함을 유지하는 ‘은둔형 경영자’로 남는 것을 고려하면 주목할 만한 행보다.
그가 트레이드마크인 수염을 17년 만에 밀고 나타난 모습은 다소 충격이었다. 김 센터장은 NHN을 퇴사한 후 미국으로 떠나면서 두 번째 인생 모멘텀 차원에서 오랜 시간 수염을 길러왔다. 당시 그는 “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하지만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라는 유명한 말을 던진 것이 이 무렵이다. 얼마후 카카오톡이 스마트폰 기기에 최적화된 소통창구로 시장을 제압한다.
수염의 효과였을까. 모바일 메신저의 신세계가 김 센장의 눈에 들어왔고, 5000만명 가입자를 거느린 국민 메신저는 여러가지 비즈니스 모델로 기적을 낳았다. 2010년 출범한 카카오는 불과 10여년 만에 자산 34조 원, 재계 서열 15위 기업으로 뛰어올랐다. 한국 기업사에서 가장 큰 성장판을 자랑한 만큼, 김 센터장의 수염은 카카오 혁신의 상징이기도 했다. 수염에 대한 이미지가 큰 만큼, 이를 깎는 행위가 주는 의미도 크다. 김 센터장에게 면도는 초심과 같은 새로운 카카오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행위로 보인다.
그래서 일까. 김 센터장이 23일 경영혁신을 위한 외부 독립기구인 준법과신뢰위원회 첫 회의에 참석해 ‘실리콘밸리 혁신 모델에 꽂힌 카카오의 혁신 모델’에 대한 자기 반성 발언이 눈길이 끌었다. 실리콘밸리 혁신 모델을 한국 시장에 적용할 때 발생되는 문제를 뒤 늦게 인지했다는 것이 요지다. 그동안 카카오는 자율 경영과 그의 은둔형 스타일을 구현한 기업문화가 하나의 상징처럼 인식됐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어떤 협력적 관계도 없지만 서로 겹치는 인적 풀을 공유한다. 카카오는 각 조직에 자율성을 주고 ‘알아서 잘하기를’ 기대하는 편이다. 반면 네이버는 일반 대기업과 비슷한 조직 체계를 강조한다. 때문에 김 센터장이 100명의 최고경영자(CEO)를 키우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았을까. 일반 기업같은 조직체계와 장악력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불가능한 구조다. 물론 회전문 인사, 무책임한 자율경영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또 경영 컨트롤타워를 세워야 한다는 식의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기업 경영의 방식, 리더십 스타일에 정답은 없다. ‘문어발’식 사업 확장이라는 비난을 듣기에 충분하지만, 한국 IT산업에서 ‘연쇄창업’ 이란 긍정의 효과도 낳았다. 김 센터장은 앞으로 외부 준법감시 기구를 통해 종합쇄신책을 내놓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상황으로 봐서는 한때 선망의 대상이었던 기업을 일궜다는 자긍심보다는 어두운 앞길을 걸어가야 한다. 맨얼굴로 돌아간 그의 작심이 얼마나 통할지, 카카오가 얼마나 환골탈태할 수 있을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김 센터장이 NHN을 떠나 미국 실리콘밸리에 홀로 남았던 시기 2007년의 마음으로 돌아가 결과물을 내 놓는다면 우리사회적 눈높이에 부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