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사제 도입·공공의대 신설·기존 의대 정원 확대 등 다양한 방안 나와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 등을 담은 ‘필수의료 혁신 전략’ 추진을 공식화했다. 붕괴 직전의 필수의료 확충, 지역별 의료격차 해소를 위한 다양한 방안이 담겼다. 다만 의대 정원 확대 규모와 방법은 구체화하지 않았다.
19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이번 정책 발표를 앞두고 여야 정치권은 물론, 의료계와 지자체 등에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의대 정원 확대 지역을 두고 지자체 간 경쟁이 불거졌고, 지역의사제 도입·공공의대 신설·국군의무사관학교 설립 등 여러 방안이 봇물 터지듯 나오는 상황이다. 의대 정원 확대를 통한 필수의료 및 지역의료 인력 확라는 목적지는 같지만, 가는 길은 제각각이다.
정치권에선 여야 모두 의대 정원 확대에 찬성한다. 다만, 의대 정원을 어디에 어떻게 늘릴지는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전날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여당의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해 원칙적으로 찬성한다”며 “소아청소년과와 산부인과 등 필수의료 붕괴를 막고 지역 의료 격차의 해소를 위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했다. 민주당은 의대 정원 확대의 전제 조건으로 △공공의대 설립 △지역의사제 도입 등을 주장하고 있다.
지역의사제는 지역의사 전형으로 선발된 인력이 10년간 의무복무하도록 하는 제도로 2020년 문재인 정부에서 제안한 정책이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조건을 곧바로 수용하기는 어렵단 입장이다. 유의동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전날 국회에서 “이해관계자들이 많이 있으니 조율해 나가는 과정”이라며 “(민주당의 지역의사제 등 요구에 대해) 필요성에 크게 공감하지 않고 있지만, 진지하게 고민해보겠다”고 말했다.
세종시를 제외한 전국 광역 시·도 중 유일하게 의과대학이 없는 전남 지역의 의대 신설 주장도 거세다. 민주당 김원이·신정훈 소병철 의원과 전남도의원, 목포시의원, 순천시의원 등은 18일 서울 전쟁기념관 앞에서 ‘윤석열 정권 전라남도 의과대학 유치 촉구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의사 정원을 늘리는 정책 목표를 실현하려면 전남권 의대 신설이 필수”라고 주장했다. 대한민국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2.5명이나, 전남의 경우 1000명당 1.7명에 그치고 있다는 이유를 꼽았다.
국회에선 의료시장 수급 불균형 해소를 위해 ‘국군의무사관학교’ 설립 의견도 나왔다.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은 전날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군의관 장기 복무 지원자가 0에 가까워지고 있다, 장기 복무 군의관 감소는 결국 유사시 총상이나 파편상 등 중증 외상 환자를 치료해야 할 숙련된 의료인이 줄어들어 군 전력을 악화시키고, 결국 우리 안보를 무너뜨리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존 의대의 정원을 늘리는 방안도 고려된다. 전날 국회에서 열린 교육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고창섭 충북대 총장은 “충북은 인구 대비 의사 수가 최하위”라며 “별도 투자 없이 100~120명까지 의대 정원 확대가 가능하다. 의과대학 정원 증원을 지원해달라”고 했다. 정치권에 따르면 현재 정부도 지방 국립대 위주로 의대 정원을 확대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고, 한 해 정원이 50명 미만인 소위 ‘미니 의대’에 우선 배분 등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공의대 신설 주장도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줄곧 공공의대 설립과 함께 의대 정원 1000명 이상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경실련 관계자는 “기존 의대에 정원을 늘리는 방식으로는 공공의료 공백이 심각한 의료취약지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며 “권역별 공공의대를 신설하고, 1000명 이상의 의대 정원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공공의대는 지역 공공의료기관에서 근무할 의사를 별도로 양성하기 위한 기관이다. 공공의대 신설은 2020년 정부와 대한의사협회가 코로나19 이후 논의하기로 합의한 4대 정책 중 하나다. 2018년 폐교한 전북 남원시 서남대 의대 정원(49명) 활용 방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논의가 시작됐다.
당장 의사 수를 늘리는 게 시급한 만큼, 현재 운영하고 있는 의대 정원을 우선 늘리는 게 맞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정부가 지속적으로 늘리겠다고 하니, 추후 공공의대나 국립보건의료전문대학원 설립 논의를 하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법적 근거도 없는 의정협의체 등에서 논의할 이유가 없다”며 “의사들과 논의해서 제대로 해결된 것이 없다. 논의는 진전되지 않았고, 시한이 닥쳐 의사결정을 해야 할 때 협의 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했다고 해왔다. 정부가 의료정책을 결정하기 위해 만든 위원회를 활용하는 것이 옳다”고 강조했다.
섣부른 의대 정원 확대는 의료 질을 낮추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의료계와 충분한 합의 없이 정원만 늘릴 경우, 의사를 양성할 인프라가 부족하고 결국 서남대 의대와 같은 ‘부실 교육’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동석 대한개원의협의회 회장은 “현재 지방 의대 상태를 분석해야 한다. 의대 정원을 확대한다고 하는데 이들을 교육할 선생님은 있는지, 실습할 장소는 있는지 면밀히 파악하고 시스템을 갖추는 게 우선이다”라며 “환자들이 다 서울로 가서 지방에 환자가 없다. 결국 의사들 모두 서울로 오게 될 것이고 지역의료는 붕괴하게 된다. 어디에 어떻게 배치하고, 지역에서 남아서 의사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 모색이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 입장을 피력했던 의료계는 정부와 논의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이날 발표에 대해 김이연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본지와 통화에서 “(의대 정원 확대) 증원 자체의 근거나 실효성을 듣고 싶었는데, 세부 내용이 없었다. 지난주부터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의료계 내부의 긴장도가 높은 상황이다. 정부와 지속 논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앞서 의협은 17일 ‘긴급 의료계 대표자 회의’를 열고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추진에 ‘강경 대응’하겠다고 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