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에세이] 동네 북 된 아동복지법…정서적 학대를 어쩌나

입력 2023-09-24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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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울산교총 등 4개 단체조합들이 4일 오후 울산 중구 교육청 앞에서 9.4 공교육 멈춤의 날 지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교사에 대한 학부모들의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가 이어지면서 ‘아동복지법’을 손봐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핵심은 ‘정서적 학대행위’를 아동학대로 규정한 제17조 5호다.

다만, 무분별한 신고가 문제지 아동복지법을 문제로 보긴 어렵다. 정서적 학대행위는 명백한 아동학대다. 원망적·거부적·적대적·경멸적 언어폭력(폭언·욕설 등), 잠을 재우지 않는 행위, 벌거벗겨 내쫓는 행위, 다른 아동과 비교·차별·편애, 따돌림 또는 따돌림 조장, 아동이 가정폭력을 목격하도록 하는 행위, 아동을 버리겠다고 위협하거나 쫓아내는 행위, 미성년자 출입금지 업소에 아동을 데려가는 행위, 아동을 감금·약취·유인에 이용하는 행위, 노동착취, 다른 아동을 학대하도록 강요하는 행위가 여기에 포함된다. 상당수는 아동학대 이전에 ‘형법’상 범죄다.

여기에 아동학대란 별도의 이름을 붙인 건 이들 행위가 아동의 정상적 발달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아동복지법 제17조 5호를 삭제하면 정서적 학대는 더 이상 학대가 아니게 된다. 연간 1만 명 넘는 아동이 ‘합법적 학대’에 노출된다. 그렇다고 교사만 예외로 뺀다면 부모나 타 기관 종사자와 교사 간 형평성 문제가 생긴다. 행위자 직업에 따라 처벌 여부가 달라지는 법은 없다.

아동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논의가 필요한 과제는 ‘학대가 아닌 학대 신고’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다. 교사들이 어려움을 호소하는 악성 신고·민원은 정서적 학대행위의 범주에서 벗어난 경우가 많다. 교사의 교육권을 침해하는 행위,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행위, 기타 일탈행위에 대한 지도·훈육과 교칙에 따른 분리·징계 등 조치는 학대로 판단되지 않는다. 이런 정상적 교육활동에 대한 무분별한 신고·민원을 줄이는 게 핵심이다.

학부모들의 무분별한 신고는 두 시각에서 접근할 수 있다.

먼저 교사를 괴롭히거나 굴복시키려는 목적의 민원·신고에 대해선 교육감 또는 학교장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 애초에 이런 민원·신고는 법이 어떻든 발생한다. 고용노동부는 본부에 ‘특별민원 직원보호반(보호반)’을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보호반은 직원을 대신해 악성민원인에 대한 고소·고발 등 소송업무를 지원한다. 직원이 민원인으로부터 정당한 사유 없이 직무유기, 직권남용, 손해배상 등 소송을 당할 때는 해당 직원의 수사·소송 과정에 직접 참여해 지원한다.

정당한 이유 없는 악성 민원·신고는 늘 명분이 바뀐다. 명분을 없애겠다며 법을 고치는 건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이런 민원·신고를 제재하는 것이다.

아동복지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제기되는 민원·신고를 줄이기 위해선 규정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정서적 학대란 표현의 포괄성과 추상성을 해소하는 것이다. 아동권리보장원에서 축적된 판례를 토대로 구체적인 사례들을 제시하고 있으나, 여전히 일부 학부모는 ‘아동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모든 행위를 정서적 학대로 인식한다. 법률을 개정해 정서적 학대에 해당하는 행위를 시행령에 위임하고, 판례로 축적된 학대 유형들을 시행령에 규정하면 정서적 학대의 모호성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정부 가이드라인이라도 필요하다.

보건복지부와 아동권리보장원에 따르면, 지난해 아동학대로 판단된 사례는 총 2만7971건이다. 아동복지법은 이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지, 교권 회복을 위한 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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