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때 나는 아이의 배를 꾹꾹 누르며 “엄마 여기 보세요. 아이가 배를 아파하는 거 같아요? 얼굴 표정을 보세요. 어때요? 아픈 표정인가요?” “배가 아프다면 내 손을 치우려 한다거나 얼굴을 찡그릴 겁니다. 하지만 가만히 있죠? 아무렇지도 안잖아요? 배에 이상이 있어 아픈 게 아니라 열이 많아서 아픈 거고 토하는 거도 마찬가지에요. 약을 더 먹고 며칠 더 가야 합니다.”
요즘 진료실에서 환자 보호자들과 주로 나누는 대화다. 한 달 전 칼럼 제목이 ‘8월에 독감’이었는데 9월인데도 여전하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고열을 주 증상으로 내원하고 며칠이 가도 열이 잘 안 떨어진다. 심지어 낮에 진료를 받았는데 밤에 더 심해져 응급실에 갔다 왔다는 환자도 많다.
검사를 했는데도 별 이상이 없었다고 하고. 사실 소아청소년과 영역에서 가장 쉬운 치료가 열감기다. 약을 먹거나 링거 치료를 받으면 바로 좋아지니까. 그런데 이번엔 아니다. 참 모질다는 생각이 든다.
헌데 주변을 둘러보면 모진 게 어디 감기뿐인가 싶다. 컵에 담긴 물을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반이나 남거나 반밖에 안 남을 수도 있는데, 아무리 긍정적인 눈으로 세상을 보려 해도 갈수록 모질어진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여야정쟁, 빈부격차, 기후변화, 교육계와 종교, 북핵문제 등 어디 하나 모질지 않은 곳이 있던가. 아무리 모질다 해도 아이들 열 감기는 열심히 치료하면 낫는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이런 문제들은 난치병 내지는 불치병 같아 진료실 창밖을 바라보며 걱정만 하고 있다.
유인철 안산유소아청소년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