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중대재해법, 50인 미만 확대 시행 유예해야

입력 2023-09-0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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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계가 곧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유예기간을 연장해 달라고 국회에 호소했다. 중소기업중앙회 김기문 회장은 어제 국회 김도읍 법제사법위원장실을 찾아 업계 우려를 전달했다. 적어도 2년 이상 유예기간 연장이 필요하다는 업계 중론도 전했다.

중대재해법은 2020년 4월 이천 물류센터 공사장 화재로 38명이 사망한 것을 계기로 제정됐다.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고 예방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 징역이나 10억 원 이하 벌금을 물리도록 하고 있다. 지난해 1월 시행됐지만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은 법 적용을 2년 유예받았다. 확대 적용은 내년 1월 27일부터다.

김 회장은 어제 “68만 개에 달하는 50인 미만 중소기업 현장에 안전보건 관리체계가 안착하기 위해서는 물리적으로 시간이 더 필요하다”면서 “경영난을 겪는 상황에서 사법리스크를 추가로 감내하느니 아예 문을 닫는 게 낫다는 한탄이 나온다”고 했다. 중소기업단체협의회 소속 8개 단체 부회장단도 입장문에서 “현장 혼란을 초래할 뿐 아니라 준비를 아예 포기해 버리는 기업들이 대거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범법자 양산과 기업 도산으로 중소기업인, 근로자 모두 피해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엄살로만 여길 일이 아니다. 해당 기업인들은 “우리 같은 소기업들은 법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호소한다. 고용노동부, 경찰 등의 일선 관계자라면 절박한 호소라는 사실을 잘 알 것이다. 어느 기업도 산업재해를 원하는 경우는 없다. 사고를 막기 위해 신경을 쓰고 노력도 기울인다. 그러나 사고는 예기치 못한 경로로 발생하는 법이다. 더욱이 영세업체는 법 지식도 부족하고 자금력도 취약하다. 안전 설비·인력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을 능력도 없다. 그럴 능력이 있다면 왜 영세기업에 매달리겠나. 그런 이들을 ‘형사처벌’로 압박하는 중대재해법의 확대 적용은 맹목적이고 무분별하다. 되레 우리 기업생태계의 뿌리를 들쑤시는 재앙이 되기 쉽다.

중기중앙회는 앞서 8월 23일부터 25일까지 5인 이상 50인 미만 중기 892개사를 대상으로 실태 및 사례조사를 했다. 80%가 ‘준비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준비를 마쳤다’는 곳은 1.2%에 불과했다. 산업 현장의 기반이 아직 취약한 것을 익히 알면서도 현실과 괴리가 있는 입법 취지만 내세우며 회초리를 들 때가 아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최근 고용노동부에 의견서를 제출해 50인 미만 확대 적용의 2년 추가 유예를 요구했다. 법 내용의 모호성을 줄이는 추가 보완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산재 사망 사고 피해자가 한국의 5분의 1 수준인 영국에서 산업안전보건 분야 전문가로 활동 중인 전규찬 러프버러대 교수가 최근 처벌 방식에 대해 영국처럼 벌금형 등으로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것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서두를 것은 논란의 여지가 큰 법의 확대 적용이 아니다. 기업생태계를 위협하는 독소조항이 무엇인지부터 세심히 들여다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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