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자] 런던을 뒤흔든 ‘녹색 피로’

입력 2023-08-2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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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포그(London fog)’, 오랜 역사를 지닌 도시의 운치있는 풍경을 떠올리기 쉽다. 런던포그는 대체로 긍정적 이미지로 자리잡고 있어 차, 의류 등 다양한 브랜드의 네이밍이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런던포그라 불리는 런던의 스모그는 아픈 과거를 품고 있다.

1949년 런던 템스강 주변 석탄발전소와 제철소 등 공업시설이 뿜어낸 유해물질은 복사역전층을 형성하여 단기간에 수천 명의 사망자를 발생시켰다. 해당 사건은 안개와 아황산가스, 석탄분진이 섞여 발생한 황산미스트가 주된 원인이었다. 이 사건은 대기오염에 의한 대규모 살상피해로 기록되며, 산업화에 의한 환경피해의 주요사례가 되었다.

대기오염과 환경피해의 상징이던 ‘런던포그’

산업혁명을 시작한 영국, 위와 같은 사례를 겪으며 환경에 대한 수많은 고민과 함께, 런던의 대기를 정화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제시해 왔다. 최근 런던시가 운영하는 환경 제도로 인해 런던 곳곳에서 관련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유럽대륙이 기후변화와 환경문제를 선도하며, 이를 반영한 다양한 정책이 영국 등 주요 국가에서 진행되고 있으나, 이에 따른 ‘녹색 피로(green fatigue)’도 만만치 않은 것이다. 대표적으로 초저배출구역(ULEZ: ultra-low emission zone) 지정 제도는 반대시위를 넘어 불법행위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ULEZ는 런던의 공기 정화를 위한 정책으로 런던을 주행하는 차량이 ULEZ 배출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12.5파운드(약 2만1000원)의 요금을 부과하는 제도다. ULEZ 배출기준 측정은 자동차, 오토바이, 밴, 미니버스 등을 대상으로 한다. ULEZ는 연중 크리스마스를 제외한 모든 날에 시행되며, 해당 요금은 운전을 하는 날마다 부과된다.

런던시는 매년 대기오염으로 고통받는 환자 수, 치료비 등의 정보를 제시하며, ULEZ의 정당성을 홍보하고 있으나, 실상은 복잡하다. ULEZ의 배출기준을 충족하려면 되도록 전기차 혹은 신차를 구입하여야 한다. 신차 구매가 어려운 취약 계층 시민은 차를 보유하기가 힘들어지는 것이다.

차가 없다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할 텐데 이마저도 만만치 않다. 철도, 버스 등 교통이 민영화된 영국 런던의 대중교통 비용은 비싼 것으로 유명하다. 게다가 그다지 오래 타지도 않은 차를 런던시 이외 지역 혹은 제3국에 판매하는 행위가 궁극적으로 모든 하늘이 이어진 상태의 대기를 정화할 수 있을 것인지도 의문이다. 시민의 입장에서 ULEZ가 단지 세수 늘리기 정책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이다. 런던시에 위치한 보리스 존슨 전 총리의 전 지역구 보궐선거에서 보수당은 노동당 후보에게 ULEZ에 대해 집요한 설전을 벌인 끝에 승리하였다. 개표 직후 노동당의 그림자 내각 멤버인 스티브 리드는 ULEZ가 선거패배의 주요 원인이라며 사디크 칸 런던시장을 비난했다.

하지만 런던시는 런던 내 중심지역에서 시범 운영되었던 ULEZ 제도가 순기능하였다고 판단했다. ULEZ는 8월 29일부터 런던시 전역에서 시행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시민들은 녹색 피로를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

급진적 녹색환경에 피로 … 시민 반발 커져

런던 시경에 의하면, 8월 18일 기준 ULEZ 감시카메라 기물 파손 행위가 288건에 이른다고 발표하였다. 런던 시경은 파손행위를 한 행위자의 이미지를 공개하여 목격자나 정보를 아는 사람을 찾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으나, 시민은 오히려 파손행위의 영상을 자랑스레 소셜미디어에 업로드하는 등 녹색 저항을 이어나가고 있다.

‘깨어 있는 문화(woke culture)’는 기존 환경에 관한 무관심을 환기시켜왔다. 하지만 녹색환경을 위한 급진적인 제도는 피로와 반발에 맞닥뜨렸다. 녹색 제도 시행에 앞서 함께 깨어 있기 위한 연대와 약자계층 보호가 고려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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