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가 어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어 이필수 의협회장 불신임 안건을 다뤘다. 보건복지부와 의협이 최근 의대 정원 확충에 합의한 데 대한 집단 반발이 탄핵 움직임으로 불거진 것이다. 불신임 안건은 어제 찬성 48표, 반대 138표로 총회 문턱을 넘지 못했지만 직역 이기주의의 벽이 얼마나 높은지 새삼 곱씹게 했다.
국내 의대 정원은 3058명이다. 정부가 2000년 의약 분업 때 의료계를 달래기 위해 정원 3500명을 단계적으로 줄여 2006년 현 수준으로 축소했다. 그 정원은 17년째 그대로다. 결과는 재앙적이다. 필수의료 구인난이 심각하다. 국내 ‘빅5 병원’ 중 하나인 서울대병원조차 외과 전문의를 구하기 위해 지난해 총 11차례 공고를 내야 했다. 외과만이 아니다. 주요 병원들은 내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등 필수 분야에서 두루 구인난을 겪고 있다.
소위 ‘응급실 뺑뺑이’만 돌다 소중한 생명을 잃은 사례도 빈번해지고 있다. 소방청에 따르면 전국의 중증도 응급환자의 1시간 이상 이송지연 사례는 2019년 4191건에서 2020년 7820건, 2021년 1만1771건, 지난해 1만4971건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3년 새 4배 가까이 급증했다. 여러 요인이 작용하지만 가장 큰 것은 역시 의사 인력 부족이다. 의대 정원 확충은 더 미룰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우리나라 임상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2.5명(2020년 기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3.7명에 한참 못 미친다. 더욱이 고령화라는 시한폭탄이 곧 우리 눈앞에서 터질 판국이다.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가 70세 넘는 고령으로 접어드는 것이다. 암, 뇌·심장 질환, 고혈압·당뇨병 같은 만성질환 환자가 폭증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50년 의사 2만2000명이 부족할 것으로 내다본다. 보건사회연구원 추계는 더 암담하다. 2035년 부족 의사가 2만7232명에 달한다. 그 어느 추계를 봐도 상황은 다급하다. 의대 증원의 길을 열어준다는 이유로 의협 집행부를 탄핵하고 판을 엎겠다고 벼르는 이들의 눈에는 이런 현실이 보이지 않는지 묻고 싶다.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 사회의 문을 연 선진국은 의대 정원을 늘려 의료 수요 증가세에 대응해 왔다. 일본의 경우 최근 의대 정원은 9330명으로 한국의 3배를 웃돈다. 미국은 20년간 38% 늘렸고, 독일은 50% 늘리는 중이다. 독일의 지난해 의대 입학정원은 1만1752명이다.
정부는 최근 의대 정원 확대 논의에 의사단체만이 아니라 수요자와 전문가를 참여시키겠다고 했다. 올바른 방향 설정이다. 하지만 진통도 크게 마련이다. 또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해서 필수 분야나 지방 의료 사각지대가 자동으로 메워지지 않는다는 점도 직시해야 한다. 포괄적인 재설계가 필요하고 유인책도 없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의대 대폭 증원을 원칙으로 삼되 구체적 실행안에 대해선 의료계 등과 함께 고민과 연구를 거듭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