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금융이 감독당국의 역할이 맞는 것일까.
올해 금융권의 화두는 단연 ‘상생 금융’이다. 연초 은행들의 이자 장사 뭇매에 대한 나비효과가 전 금융권의 상생금융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발걸음한 금융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수 천억원에서 조 단위의 선물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금융사들은 이왕이면 첫 번째가 낫겠다며 물밑 경쟁을 하고, 다음 타자는 바통을 이어받아 더 큰 액수를 내놓는 다. 선두를 놓친 기업은 내부에서 “너네는 뭐하느라 ‘일빠(처음)’를 뺏겼냐”는 핀잔을 들었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통상 금융사들의 사회공헌의 배경엔 ‘홍보 효과’가 자리한다. “우리 금융사가 이렇게까지 국민들을 위해 힘쓰고 있어요”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금융사의 역할은 일반 제조업과는 달리 국민들의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의 상생 금융 릴레이는 사뭇 다른 뉘앙스가 풍긴다. 금융사들의 시선이 국민이 아닌 감독당국을 향한 것 같아서다. 상생 릴레이를 언제 어떻게 따라가야 하는지를 두고 금융사 간 눈치싸움이 치열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금융사 한 고위 관계자는 “상생 금융에 잘못 나섰다가 정책당국에 감독당국 편이라는 낙인이 찍힐까 봐 고민”이라고 토로했다.
경기가 어려울 때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금융사들이 국민을 위해 나서주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상생 금융이라는 좋은 의도의 사업을 두고 감독당국과 정책당국의 역할을 나누는 것도 무의미할 수 있겠다. 다만 금융사들이 상생 금융이 정책당국의 역할이 아닌 감독당국의 역할인지 묻는 질문에 씁쓸한 미소만 짓는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해외 일정을 함께 소화해서, 빚진 게 있어서, 아니면 앞으로 빚질 게 있어서…. 금융사가 선정된 배경을 두고도 확인하지 못할 말들이 오간다. 좋은 취지의 사업이 수많은 억측을 낳아 감독기구 안팎을 둘러싸고 있다. 분명한 건 감독 기구는 금융사와의 적당한 거리감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논란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는 금융사에 가서 상생금융을 치하하는 아이러니한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