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窓] ‘미술품 물납제’ 자리잡으려면

입력 2023-07-1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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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세란 상속자산의 수령인에게 부과하는 세금으로, 재산세와 달리 사망한 사람으로부터 상속된 자산에 대한 부과금이다. 상속액의 가치에 따라 부과되며 이를 납부하는 사람은 상속인이다. 상속세의 납부는 모든 상속에 대한 의무다.

법적으로 조세의 기본원칙은 금전납부다. 그러나 상증법 개정으로 올해 상속개시분부터 문화재, 미술품도 상속세 물납이 허용됐다. 우리나라도 납부가 가능한 물품의 기준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요청하는 것으로 역사적,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명시하고 있다. 또한 상속세 납부액이 2000만 원을 넘어야 한다. 이처럼 세금을 미술품으로 내는 것을 ‘미술품 물납제’라고 일컫는다.

미술품 물납에 대한 관심은 2020년 11월 국내 최고 자산가인 삼성그룹 이건의 회장의 별세로 촉발됐다. 당시 어느 만큼의 상속세가 부과될지가 큰 이슈였다. 유족들은 12조 원대에 달하는 상속세를 국세청에 신고했고 고인이 소장하고 있던 2만3000여 점에 달하는 개인소장 미술품을 국립기관에 기증했다. 올해부터 적용되는 물납제는 이건의 회장의 개인기증품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 세제는 1896년 영국에서 처음 시행됐다. 이 나라에서는 상속세 물납이 가능하다. 다만 영국예술위원회와 대물변제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엄선된 가치평가가 이뤄진 작품들만 가능하다. 이 제도 덕분에 지금의 내셔널갤러리나 테이트모던미술관 설립이 가능했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프랑스의 경우 약 70년 후에 해당 제도를 도입했다. 영국과 달리, 1968년 시행한 프랑스의 미술품 물납제는 상속세는 물론 증여세 재산세 등까지도 미술품으로 대납하게끔 그 활용범위를 확대했다. 단 상속세액이 1만 유로 이상일 때만 해당 미술품 물납제를 허용하며, 작품 소유기간이 최소 5년 이상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프랑스에서도 미술품 물납 시 국가예술문화제와 보존심의위원회의 까다로운 심의를 거쳐야 한다.

프랑스에서는 살아있는 미술작가의 작품으로도 대물변제 신청이 가능하지만 미술시장과의 이해충돌을 피하기 위해 지금은 아주 극히 제한된 범위로만 승인하고 있다. 파리 피카소미술관은 피카소 사망 후에 유가족들이 상속세를 대신해서 피카소의 작품 수천 점을 국가에 물납했고, 프랑스 정부가 직접 설립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프랑스 미술품 대납제의 대표적인 긍정적 사례로 지금은 유명 관광지로서 그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영국과 같은 미술품 물납제를 통한 상속세 납부가 가능하다. 법률상 등록된 특정 작품에 한해서만 가능하며 특이하게 ‘선공개 후물납’ 제도로만 시행하고 있다. 소유자가 문화청에 미술품 등록을 신청한 후 받아들여질 경우에 상속세 물납 가능 대상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들 세 나라의 공통점은 아무 작품이나 대납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해당 조세법 시행국들은 미술품에 특별하고 예외적인 가치가 증명된 작품들에 한해 물납 자격을 부여한다. 영국에선 국가적 역사적 과학적 예술적 가치가 출중한 작품으로 규정하고 있고, 프랑스의 경우 고도의 예술적 역사적 가치를 지닌 작품에 한하며, 일본은 제작이 우수하거나 회화사, 조각사, 공예사상 특별한 의의가 있는 것 중 세계 문화 견지에서 귀중한 작품에 한한 것만 물납제 대상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 나라들은 근본적으로 자국민의 예술 향유권을 강화시키고자 예술품의 해외 반출을 막는 데 초점을 맞추고 정책을 펴고 있다.

올해부터 시행되고 있는 미술품 물납제가 자리잡으려면 무엇보다 ‘투명한 작품 평가 시스템’ 구축이 관건이다. 이를 통한 훌륭한 작품을 국내에 다수 확보해 향후 거대해질 아시아 미술시장의 주역으로, 예술선진국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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