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서울 관악·구로 일대서 38억 ‘전세사기’ 일당 1심서 중형

입력 2023-06-27 15:45수정 2023-06-27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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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탁회사 등기 매물 “보증금 반환 가능” 속여 임대차 계약
60대 실소유주 징역 8년6개월·30대 중개보조인 3년6개월
재판부 “피해자 고통 극심…형사사법 절차 준엄함 일깨워야”

▲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연합뉴스)

담보 신탁으로 부동산 소유권이 없는데도 임차인을 속여 전세보증금 38억 원을 가로챈 일당이 1심에서 중형을 선고받았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9단독 채희인 판사는 20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사기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송모(68) 씨에게 징역 8년6개월을 선고했다. 사기 및 공인중개사법 위반 혐의로 함께 구속돼 재판에 넘겨진 박모(35) 씨는 징역 3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부동산 실소유주와 중개보조인인 이들은 신탁회사의 등기 매물에 ‘가짜 집주인’을 내세워 계약을 맺은 뒤, 보증금을 밑천으로 다른 주택을 매입하는 등 전형적인 전세사기 수법을 활용했다.

판결문을 보면, 송 씨는 서울 구로구에 구로동에 빌라 한 채를 건축해 2016년 7월 신탁사와 해당 건물에 대한 신탁계약을 체결했다. 신탁이 설정된 부동산은 원칙적으로 위탁자가 전세계약을 체결할 권한이 없다.

하지만 송 씨는 2017년부터 이 빌라의 전세계약을 맺으면서 임차인들에게 신탁등기에 대한 고지를 하지 않거나 전세계약의 효력이 없다는 사실 등을 설명하지 않았다. 일부 임차인에게는 보증금 반환을 보장한다고 속여 공정증서를 작성해주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박 씨는 부동산 플랫폼에 해당 매물 광고를 게시하고, 임차인을 모집해 “문제가 발생할 여지는 없다”며 부추겼다. 중개사 자격이 없음에도 계약서에 직접 서명·날인하는 등 실질적인 중개업무를 담당해 수수료 명목으로 건당 100만~200만 원을 챙겼다.

이들이 2021년 7월까지 편취한 보증금은 38억 원에 달했다. 파악된 피해자는 47명이지만,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경찰 관계자는 “올해 1월 해당 사건을 검찰에 송치한 이후 송 씨 일당 관련 9건의 신고가 추가 접수돼 수사 중”이라고 말했다.

2020년 말 송 씨는 구로구 오류동 오피스텔 1개 호실을 임대하며 “보증금을 받으면 신탁등기를 말소해주겠다”고 속여 2억2000만 원을 편취해 불구속 기소된 바 있다. 이후 구로동 빌라건 등으로 재판에 넘겨지면서 3개 사건이 병합돼 박 씨와 함께 구속된 것이다.

송 씨는 전세 보증금 액수를 낮춘 허위 임대차 계약서 이용해 건물 담보가치를 높이는 수법으로 금융기관에서 약 13억 원을 대출받은 혐의(위조 사문서 행사), 관악구 신림동 3층 주택을 공동 매수하면서 명의 신탁해 수탁자 명의로만 등기한 혐의(부동산실명법)도 있다.

앞서 송 씨는 위증죄, 사기미수죄, 부정수표단속법위반죄 등으로 유죄판결을, 박 씨 역시 공무집행방해죄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이들이 전세사기 범행일 사이에 다른 사건으로 확정 판결을 받은 만큼, 재판부는 각 혐의별로 형을 나눠 선고했다.

채 판사는 “‘전세사기’는 서민층과 사회초년생들인 피해자의 삶의 기반을 뿌리째 흔드는 매우 중대한 범행으로, 적극적으로 피해자를 기망했다”며 “피해자들은 여전히 극심한 고통 속에서 살고 있고, 피고인들에 대한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자기 자본 없이 무리하게 건축물을 신축·매입하고 임대차 계약을 체결한 게 사건의 근본적 원인이지만, 피고인들은 오히려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며 “준법의식이 미약해 형사사법 절차의 준엄함을 일깨워 줄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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