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주가조작 세력이었다 [세력, 계좌를 탐하다]⑤

입력 2023-06-07 16:00수정 2023-06-07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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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세조종 사건으로 수감 중인 당사자 관련 사건 판결문 취재
시세조종 담당 공동정범들의 수법, 공모 과정 1인칭 관점 서술

금융당국은 시세조종을 ‘주가를 특정세력이 인위적으로 상승·하락시키는 행위’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이번 SG발 주가 조작을 두고 금융투자업계는 시세조종으로 둔갑한 ‘다단계 사기’라고 입을 모은다. 본지는 시세 조종 사건 4건의 판례를 바탕으로 조작단의 행태를 1인칭 관점으로 각색해 서술했다. 일확천금을 꿈꾸는 투자자들의 눈먼 욕심에 조작단이 어떻게 접근하는지를 전하고자 함이다. 각색을 위해 참고한 해당 사건의 조작단 주범은 각각 징역 8년형, 6년형, 5년형, 공범은 2~3년 형을 받았다. 투자자가 자기책임 원칙을 기억할 때 ‘검은 손길’은 자취를 감출 것이다.

▲SG(소시에테제네랄)증권발 폭락 사태와 관련해 주가조작을 주도한 의혹을 받는 라덕연 투자자문업체 H사 대표가 지난달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50배.’ 눈을 의심했다. 모니터에 비친 주가 그래프가 위로 솟아올랐다. 초기 투자금 20억 원이 1000억 원으로 불어난 순간이다. 염원이 현실로 바뀌었다. 6개월간의 대장정에 막을 내려야 할 때다. 3년 전 감옥에서 만난 김 형님에게 나는 “최소 10배”라며 호언장담했었다. 기대했던 수익의 5배를 넘기다니 예상을 넘어선 일이다.

“우리 사업 하나 같이 하자.” 김 형님은 나를 처음 만난지 며칠 되지 않아 대뜸 제안을 내놨다. 유망한 휴대폰 부품 관련 업체 A사를 설립해 우회상장을 고민해온 김 형님은 나를 사업 파트너로 점찍었다. 명동 사채업자인 강 형님을 같이 아는 사이이기도 했지만, 나에게 붙은 ‘M&A 기업사냥꾼’이란 오명이 적잖이 도움됐던 터다. 김 형님은 충분히 실력 있는 회사를 키워냈지만, 투자자들로부터 계속 외면받으며 발목이 잡힌 상황이었다.

나는 건실하지만 성장이 더뎠던 코스닥 상장사들을 인수해 자본시장에서 제값을 받게끔 하는 데 소질이 있다고 자부해왔다. 비록 일을 그르쳐 상장폐지 되긴 했지만, 이전엔 국내 굴지의 기업 삼성전자의 납품업체를 인수한 후 주가를 크게 올려 세간의 주목도 받았다.

나는 김형님과 함께 대출 차입자금으로 코스닥 상장사인 소프트웨어 업체 B사를 인수하기로 했다. B사의 대주주는 안면이 있던 사이로 말이 잘 통했다. 강남 모처에서 만나 주식을 넘겨받기로 한 후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 대출금은 강 형님을 통해 명동에서 끌어왔다. 강 형님은 명동 쩐주들에게 돈을 받아올 수 있는 든든한 우군이다.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 후 인수 과정도 순조로웠다. B사 인수 후 최대주주 자리에 오른 김 형님과 나는 각자 대표이사직을 맡았다.

회사를 접수한 후에는 일사천리였다. 1차 목표인 초기 인수자금 메꾸기부터 시작했다. 납입한 돈을 다시 빼내 채권자들에게 줘야 했기 때문이다. 가장납입이나 횡령 등의 리스크가 있긴 했지만 후일의 기대수익을 생각하면 감수할만한 이벤트였다. 나는 예전부터 알던 동생들을 재무담당 임원 자리로 스카우트했다. 회사 자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고, 허위 매출장부를 꾸미는 일 등을 지시했다.

인수자금 문제를 마무리한 후엔 본격적으로 자금 모집에 나섰다. 작전의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선 꼭 필요한 작업이었다. 여기에는 다단계 후원 모델에 빠삭한 동생이 중책을 맡았다. 먼저 전국을 돌며 투자설명회를 열었다. 전략적으로 몇몇 도시에는 말빨이 좋은 동생들을 보내 일일이 설득 작업을 지시했다. 정부 관계자를 참석시킨 만큼 신뢰도는 더 올라갈 것이라 봤다. 일주일 사이 3배 이상 수익을 낸 통장의 숫자를 직접 보여주도록 했다.

4개월 만에 3000여 명의 투자자가 모였다. 수익금에 호기심이 폭발한 투자자들로부터 수천만 원이 든 계좌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직접 건네받았다. 매일 늘어가는 계좌 수를 보며 마음이 벅차올랐다. 모집한 자금으로 주가를 올린 후 차익 실현을 통해 다시 일부를 투자자들에게 수익금으로 돌려줬다. 꼬리에 꼬리를 문 투자 소개가 줄을 이었다.

▲시세조종 작전세력과 기관 투자자간의 범행 흐름도 (이투데이)

물론 이 모든 과정은 보안이 최우선이었다. 나는 핸드폰을 이용해 하루에도 몇 번씩 고용인들과 연락하며 내용을 보고받고 지시를 내렸다. 중요한 사항을 논의할 때는 내가 머무르는 홍콩 호텔로 불러야 할 때도 있었다. 김 형님은 가끔 답답함을 토로하기 일쑤였지만 늘어가는 계좌 앞에 이내 누그러졌다.

지난해 10월, 비로소 본격적인 작전에 돌입했다. 자금 모집용 차익금 마련을 위해 활용하던 계좌들 이외에 새 계좌들을 활용키로 했다. 작전에 능한 주식꾼 C와 평소 알고 지내던 증권사 직원 D가 중요 역할을 맡아줬다. C가 고가매수, 허수매매, 물량소진주문 등을 요청하면 D는 주문을 제출해 주식을 매매하고 자금이체를 맡았다. 둘의 손발이 잘 맞아들어가면서 주가는 원하던 수준으로 높아져 갔다.

3000원이었던 주가는 6개월 만에 3만2000원까지 올랐다. 주식의 70%가량은 이미 보유 중이었고, 시중에 유통되는 주식은 총 발행 주식의 30%에 불과했던 터다. 때문에 주식 매집으로 손쉽게 시세를 들어 올릴 수 있었다. 금융기관의 감시망에 쉽사리 잡히지 않도록 매일 주가를 2% 정도씩 야금야금 오르도록 세팅한 부분도 딱 맞아 떨어졌다.

김 형님은 주가 변동에 맞춰 신규 사업과 자금조달 등 보도자료 배포에 나섰다. 김 형님은 소프트웨어 개발사 등 여러 회사에 대한 인수합병 소식을 홍보에 적극 활용했다. 공시 자료가 나올 때마다 주가는 며칠이고 들썩였다. 김 형님의 외국계 투자은행 인맥도 동원됐다. 글로벌 투자은행이 블록딜로 주식을 대량 매수했다는 소식은 주가 상승의 큰 터닝포인트였다.

50배 오른 주가에 들뜬 목소리도 잠시. 김 형님과 나는 길었던 여정의 종지부를 찍기로 했다. 차익 실현 방식은 몇 차에 걸친 블록딜 매도로 입을 맞춰뒀다. 대량 매도가 나오면 세상은 뒤집힐 거다. 노후자금 등 수억 원의 피해를 본 투자자들이 회사로 몰려들고, 금융당국 등 기관이 수사망을 좁혀 올 테다. 그러나 몇 차례나 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렸던 만큼 어렵지 않다. 이전 사건에서 나는 징역 5년형을 받았다. 5년간 감옥에서 했던 새 사업 구상도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 내가 데리고 있던 동생들은 2~3년가량 형을 받았다. 수사망에 걸려도 동요되진 않는다. 사람들은 날 '경제사범'이라고 치켜세울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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