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대화가 필요해”

입력 2023-05-31 05:00수정 2023-08-10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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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두 번째다. 국회 법안 의결, 대통령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 국회 재의결 후 부결에 따른 법안 폐기 횟수다. 지난달 말 국회 문턱을 넘었던 간호법 제정안이 결국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이후 30일 국회 재의결을 통해 부결되며 폐기됐다. 간호법 제정안은 4월 27일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달 16일 국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했고, 다시 국회로 넘어왔지만 이날 최종 부결됐다.

‘의무매입 조항’을 놓고 여당인 국민의힘과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합의점을 찾지 못했던 양곡관리법 개정안도 같은 절차를 밟았다. 3월 23일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된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4월 4일 대통령 거부권 행사, 4월 14일 국회 재의의 건 표결 부결로 폐기됐다.

취임 후 1년간 이뤄진 국회 의결 법안에 대한 두 번의 대통령 거부권 행사는 초유의 일로 여겨진다. 두 법안의 국회 의결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고, 거대 야당인 민주당 주도로 이뤄졌다는 점, 강대강 대치 국면인 현재 정치권 상황을 놓고 보면 당연한 수순으로 볼 여지도 있다.

하지만 국민 처지에서 한숨이 나올법하다. 불과 2개월 만에 두 차례 법안 폐기가 이뤄졌고,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 과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화(對話)는 없었고, 대립(對立)만 보였다. ‘정치는 대화와 타협’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대화는 실종됐고, 국회의장의 중재는 안중에도 없었다. 상대방 탓만 하고 있다. 대화를 통해 정책 대안을 내놓으려는 정부의 노력도 부족하다.

여야 정치권, 대통령실, 정부 모두 할 말은 많다. 간호법 제정안 국회 통과를 주도한 야당, 이를 반대한 여당, 거부권을 행사한 대통령조차 ‘국민건강’을 내세웠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에서도 ‘농업과 농민’을 위한 판단이라 했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국민=유권자=표’라는 각자의 입장만이 눈에 들어온다. 국민은 이해득실만 따지려는 정치권, 뚜렷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는 정부, 대화할 생각이 없는 대통령을 마주하고 있다. 두 차례의 법안 폐기 과정에서 이유로 제시했던 ‘국민’을 생각한다는 진정성은 찾기 어렵다.

문제는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민주당이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과 방송법(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도 여야 간 견해차가 뚜렷하다. 여당에선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방해)를 고려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세 번째, 네 번째 대통령 거부권 행사 이야기도 나온다.

하루 뒤 시행 예정인 비대면진료 시범사업도 논란이다. 정부는 코로나19 기간 한시적 비대면진료를 허용했다. 하지만 코로나19 경보가 심각에서 경계로 하향되면서 6월 1일 종료된다. 정부가 의료법 개정으로 비대면진료 제도화에 나섰지만, 국회 합의 불발로 발목이 잡혔다. 정부는 법 개정 전 시범사업 카드를 꺼냈다. 그러나 역시 대화가 부족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달 중순에서야 정부는 당정협의 후 시범사업 추진안을 공개했고, 시행 이틀 전인 30일에서야 구체 안을 내놨다. 비대면진료 업계와의 공식적인 대화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반면 약 30년 전 대한민국 보건의료 및 건강보험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꾼 계기였던 의약분업 도입 과정은 달랐다. 논의 시작은 1993년이다. 당시 약사법 개정으로 1999년 7월 7일 이전 시행이 명문화됐고, 많은 사회적 논의와 대화를 통해 2000년 8월 의약분업 시행이란 합의가 이뤄졌다. 계획보다 도입이 1년 뒤로 미뤄진 이유는 의사·약사·시민단체는 물론 정부와 학계, 언론계 등이 참여하는 의약분업실행위원회를 구성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다. 국회도 시행 1년 연기 등 사회적 합의를 위한 노력에 힘을 보탰다.

대화를 통한 합의에는 협상이 필요하고, 이 과정에서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귀를 여는 자세는 필수다. 의약분업 도입 과정에서 보듯 ‘대화와 합의’의 전제조건은 여야 정치권, 정부, 대통령이 강조한 ‘국민’이어야 한다.

“대화가 필요해 우린 대화가 부족해”, 2002년 나온 듀엣 더 자두가 부른 ‘대화가 필요해’의 마지막 소절 가사 일부다. 국민들은 대통령, 정부, 여야 정치권(국회)이 ‘국민을 위한’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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