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놀이터] 당신도 도청에 ‘쫄고’ 있나요?

입력 2023-05-1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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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제목이 내용을 대충 알려주지만 미국의 도청 사건 제목은 여러 가지 상상을 유발했다. 모의 중인 범죄나 적군의 공격을 막는 도청의 순기능을 인정하더라도 공개될 정책까지 도청할 필요가 있을까? 이해 당사자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제안을 비공개로 할 수도 있겠지만 역으로 제안을 공개해 갈등을 조율할 수도 있지 않은가? 최근 많은 저널들도 열람 문턱을 낮췄고 소프트웨어 개발자도 원시 코드를 자주 공개한다. 개인정보와 기업비밀이 아니라면 공개하는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도청 문제가 터졌으니 필자는 의아했다.

도청은 통신기술 결함 파고들어

미국에서 폭로된 도청내용은 우크라이나 포탄 지원을 두고 벌이는 대통령실의 대화 내용이다. 우크라이나 지원은 유럽이나 미국도 공개적으로 처리하므로 우리만 비공개로 처리할 필요도 없고 도청으로 무리하며 얻을 정보도 아니다. 그런데 도청은 이루어졌고 관련 당사자는 경질됐다. 미국은 도청으로 정치가의 성향을 파악했고 답답한 정책에 물꼬를 냈다.

사람들은 이후에 이뤄진 외교적 결단에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도청이라는 수단에는 착잡함을 느낀다. 과거 오바마 정권도 독일 메르켈 총리 전화를 도청하다 발각돼 개선을 약속했다. 앞으로 도청을 방지하려면 같은 사과를 받아야 하지만 공식성과 엄밀성을 챙길수록 우리 보안 수준이 미국에 노출되는 부작용도 있다. 반응이 없으면 도청자는 자신의 도청기술을 의심하게 되고 새로운 시도를 하느라 자원을 소진한다. 도청 방지는 반응을 숨기는 데서 시작되고 암호기술로 마무리된다.

보안기술은 개발되고 진보되지만 설명을 듣기는 어렵다. 큰소리 치는 보안 전문가도 본론으로 들어가면 보안상 더 이상 설명할 수 없다며 입을 다문다. 보안기술자는 사기꾼이 아닌지 의심이 들지만 보안 자체가 그렇다. 보안기술은 스스로 논리적 모순을 야기하는 기술이다.

이번에 미국은 시긴트(Signal Intelligence) 도청기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 기술은 스파이를 심어 정보를 캐는 휴민트(Human Intelligence)에서 진일보한 기술이다. 정보가 생성돼 전달되는 모든 경로에서 정보 누설 가능성이 있다. 대화는 도청 마이크를 심어 빼낼 수 있고 창문에 쏜 레이저로 읽힐 수도 있다. 미약한 중력파를 잡아내는 첨단기기라면 건물 내부에서 일어나는 대화도 충분히 잡아낼 수 있을 것이다. 건물은 바람에 흔들리지만 발자국과 작은 말소리에도 흔들린다. 건물 흔들림을 정교하게 측정해 큰 진동을 제거하고 나면 미세한 운동이 보이고 이를 가청주파수 영역으로 한정하면 말소리가 들린다.

한국 통신기술은 세계 최고수준

생성된 정보는 공기를 통해 무선으로 전파되거나 전선을 통해 유선으로 확산된다. 공기는 모든 방향으로 열려 있고 유선은 한두 전선을 공유하므로 도청기는 어느 지점이나 설치될 수 있다. 통신시스템이나 우편 시스템이 정보를 전달하려 사용하는 출발지와 도착지의 공개된 주소 정보를 도청기도 쉽게 얻을 수 있다.

필자도 비닐하우스에 중국제 CCTV를 달면서 중국 본사가 내 밭을 감시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본사는 기기고유번호를 통해 CCTV를 이론적으로 추적할 가능성이 있다. 개방형 통신이론에 따르면 인접한 기기끼리는 기기고유번호를 사용해 통신하지만 장거리 통신은 기기고유번호 대신 인터넷 주소를 사용한다. 내가 인터넷 주소를 알려주지 않는 이상 중국 본사도 우리 밭을 볼 수 없다.

인터넷 주소를 알려주더라도 통신 내용을 숨길 수 있다. 통신내용에 128비트(bit)나 256비트로 암호를 걸어 버리면 아무도 해독할 수 없다. 암호화된 내용이 밝혀지는 이유는 암호를 1234와 같은 유추하기 쉬운 문자열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암호를 해독하는 컴퓨터의 성능이 향상되면 암호 비트 수를 높이면 그만이다.

도청기술은 통신기술의 결함을 파고든다. 창과 방패의 싸움이지만 통신기술자들이 다수이고 공익적 관점에서 기술을 발전시키므로 도청 기술을 앞설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은 암호와 해독기술에 대해 무응답으로 대응하므로 후발주자들을 ‘쫄게’ 만든다. 암호 기술에 대한 과찬도 비하도 보안의 금기사항이다. 한국이 통신기술의 세계 표준을 정할 수 있는 수준이므로 겁먹을 필요가 없다. 착잡함을 담대함으로 날려 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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