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놀이터] 인간의 친구가 된 개만의 DNA

입력 2023-04-2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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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난영 과학칼럼니스트

해발 1900미터에 위치한 에티오피아 동부의 도시 하라르(Harar). 일상이 지나가고 어둠이 내린 도시 한편에서 한 남자가 울부짖는다. 가래를 뱉는 듯 탁하고 다소 숨찬 느낌의 신호음이 꽤 오래 이어졌다. 그리고 서서히 특별한 손님들이 마을 안으로 몰려든다. 하이에나다! 얼마 전 EBS에서 방영된 다큐프라임 ‘가축’의 한 장면이다. ‘위대한 동행’이란 부제를 달고 야생동물들의 가축화 과정을 살펴보는 다큐였다.

무리 중 몇몇 하이에나가 검고 뭉툭한 주둥이 사이로 날카로운 이를 드러낸다. 당장이라도 인간을 향해 돌진할 기세다. 그런데 의외로 슬금슬금 사람들에게 다가가더니 손에 들린 고기를 얌전히 받아간다. 그러고는 사람들 주변에 편안히 엎드려 있다. 하지만 이게 다다. “워낙 야생성이 강해 다가오게 할 수는 있었지만, 인간 곁에 머물도록 만들지는 못했다”는 코멘트가 나온다.

위의 예처럼 야생성을 순화시킬 수는 있어도 인간에게 순종하고, 더 나아가 서로 정서적 교감을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야생동물을 변화시키는 건 간단치 않다. 이런 면에서 야생을 누비던 개가 어떻게 인간과 같은 공간에 머물고 친구의 반열에까지 이르게 됐는지는 큰 미스터리다.

언제부터? 어떻게? 개 가축화 미스터리

통설에 의하면 개는 오래전 회색늑대(Canis lupus)로부터 갈라져 나와 인간의 생활 영역으로 왔다고 한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지금 내 옆에서 꼬리를 흔들며 따뜻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우리 견공의 깊은 내면엔 야생을 누비던 늑대의 DNA가 들어있단 의미다.

개의 기원으로 여겨지는 늑대의 가축화는 도대체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 이에 대해선 여러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일례로 개의 골격이 발견된 구석기 유적을 토대로 추정된 가축화의 시작은 약 1만5000년 전이다. 하지만 유전자 분석 결과에 의하면 그 시기는 훨씬 더 앞당겨진 약 4만 년 전으로 추정된다. 한마디로 개는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 활동의 동반자였다.

‘언제부터’뿐만 아니라 ‘어떻게’ 길들여졌는지 역시 아직은 명확하지 않다. 2021년 7월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에 실린 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빙하기 수렵 채집인이 남는 고기를 늑대 새끼에 던져 주던 데서 가축화가 시작됐다. 약 2만 년 전 거대한 빙하가 지구의 대부분 지역을 뒤덮었는데 이때를 마지막 최대 빙하기(LGM, Last Glacial Maximum)라 부른다. 당시 유럽의 수렵 채집민들은 매머드, 코뿔소, 순록 등 포유류들을 사냥하거나 식용 식물을 채집하며 이 혹독한 시간을 견뎠다.

그런데 인간은 고기를 과도하게 섭취할 경우 설사에 시달리게 된다. 게다가 당시 사냥감들은 척박한 기후 탓에 대부분 지방이 적고 살코기의 비율이 높아, 이들을 과도하게 섭취할 경우 단백질 중독에 걸릴 위험이 높았다. 때문에 사람들은 도축한 동물의 다리 혹은 두개골에 축적된 지방을 주로 섭취했고 남는 살코기를 늑대에게 주었다. 그리고 인간과는 달리 몇 달간 단백질만 섭취하는 게 가능한 늑대들은 자신에게 먹이를 제공해 주는 인간에게 익숙해졌고 이로써 인간 주변에 머물게 됐단 주장이다.

가축화와 관련, 개는 인간에 대해 매우 협력적인 태도를 보이는데 늑대는 왜 그렇지 않은가도 큰 의문 중 하나다. 여러 연구 결과에 의하면 개와 늑대는 동일한 유전자 구조를 갖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유전적 차이가 미미하다. 일례로 중국 토종 개와 회색늑대 사이보다 품종이 다른 개들 사이에서 더 큰 유전적 다양성이 발견된다고 한다. 그런데도 늑대는 인간과 거리를 두고 야생성을 유지하는 반면 개는 ‘사람 마음을 헤아린다’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인간의 말을 잘 따르고 사교적이다. 이런 차이는 일정 유전자의 변형 때문이란 주장이 있다.

‘윌리엄스 증후군’ 유전자 변형 발견

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진화생물학 연구팀이 33개 품종의 개와 늑대의 유전자 데이터를 비교 분석했는데, 윌리엄스 보이렌 증후군을 앓는 사람에게서 보이는 ‘GTF2I’과 ‘GTF2IRD1’ 유전자의 변형이 개한테도 발견됐다. 반면 늑대의 경우 이런 유전 변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윌리엄스 증후군이 있는 사람들은 지나치게 사교적이다. 또한 공감 능력이 뛰어나고 타인의 감정에 의해 쉽게 동요하는 특징을 가졌다. 야생 늑대를 순종적인 개로 가축화하는 과정에는 유전 변이도 한몫했단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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