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 동아대학교 국제전문대학원 교수
이러한 와중에 이탈리아에서는 모국어 사용의 비중이 줄어드는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져왔다. 이탈리아는 한때 로마제국으로 패권국의 지위에 있었으며, 중세시대 사회·문화의 구심 역할을 해왔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이탈리아어는 자국 내에서도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의 영향과 부침에 처해 있다. 집권 여당인 이탈리아형제당(Fratelli d’Italia) 소속 하원 부의장인 파비오 람펠리(Fabio Rampelli)는 지난해 12월 23일 하원에 해당 입법 초안을 제안하고, 올해 3월 총 8개 장으로 구성된 ‘이탈리아어 보호 및 증진을 위한 법안’을 발의하였다. 람펠리 부의장은 이러한 법안이 비판을 받을 것을 알고 있으나, 이탈리아어를 옹호하고 국가 정체성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언론 인터뷰를 통해 피력하였다.
이 법안은 이탈리아어로 동일한 의미를 가진 용어가 있는 경우 이탈리아 내 공공기관이나 민간기업이 외국어로 된 용어의 사용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모국어를 보호하고자 한다. 이를 위반하면 최대 10만 유로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하도록 하여 이탈리아 내 격론이 이어지고 있다. 람펠리 부의장과 공동 발의자들은 2000년대 이후 정치나 정책, 법률과 제도에 이르기까지 이탈리아 전역에 영어화가 과도하게 진행되어, 이로부터 이탈리아어를 보호해야 한다며 법의 정당성을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일부 언어학자들은 살아있는 언어는 늘 외부의 영향을 받아 표현이 유입되고 변화하며 이를 토대로 다시 풍부해진다고 반론한다. 반대론자들의 지적처럼 자연스러운 언어 현상을 법을 통해 과도하게 제어하는 게 가능할지도 의문스럽다. 이 법 4조에는 ‘공무원이 이탈리아어를 알아야 함’을 적시하고 있는데, 공식 언어가 이탈리아어인 국가에서 공공 문서나 계약서가 이탈리아어로 작성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여 이를 법에 명시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반대론자들은 법으로 CEO와 같은 두문자어(acronym)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 지적한다. 이에 람펠리 부의장은 모국어 보호법이 이탈리아어가 처음이 아님을 강조한다. 프랑스는 이미 1994년 프랑스어 사용 관련법인 ‘투봉(Toubon)법’을 통해 프랑스어의 보호를 훌륭히 해냈음을 역설한다. 당시 투봉 문화부 장관은 정부 간행물, 광고, 작업장, 상업 계약 및 협상, 국영 학교 및 기타 상황에서 프랑스어 사용을 의무화하였다.
법안 발의 이후 CNN 등 국외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법안 초안을 볼 기회를 가졌던 CNN은 단어의 잘못된 발음조차도 위반자에게 벌금이 부과될 수 있음을 보도하는 촌극을 빚기도 하였다. 문제는 디테일에 있다. 해당 법안은 다양성을 존중하는 21세기를 고려하여 좀 더 촘촘하게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이탈리아는 헌법을 통해 소수 언어를 보호하고 있다. 이탈리아 헌법에 제시된 공식 소수언어만도 알바니아어, 카탈루냐어, 게르만어, 그리코어, 크로아티아어, 프로방스 프랑스어 등 12개이다. 이탈리아 모국어 보호법이 영어만을 특정하여 사용 금지할 수 없는 만큼 법률 간 충돌 등 다양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